* 김종구 해진
















* 조지승 히카루













* 문성일 세훈












"결국 우리들은 사랑의 모든 형태에 탐닉했으며,"

"사랑이 베풀어줄 수 있는 모든 희열을 맛보았노라."







"넌 나의 작고 달콤한 늪, 당당하고 아름답고 사랑받는 꿈."







"그게 누구라도, 편지의 주인을 나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1. 도대체 누가 ㄱㅈㅎ에게 일감을 자꾸 주는가. 좀만 더 세련되게, 센스 있게 뽑았으면 그럴싸한 B급 뮤지컬이 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이도 저도 아닌 8급 뮤지컬이다.


2. 내가 리딩 보고 플레임즈 생각난다고 했잖아요... 본공도 마찬가지야...?😉 


3. 사진으로 봤을 때보다 전체적으로 무대 색감 자체가 더 밝아서 일단 들어가자마자 놀랐음. 그리고 조명도 너무 밝게 쓰더라. 차라리 어두운 부분을 더 강조해서 중간중간 튀어나오는 코러스의 노래나 춤, 비지터의 어그로가 더 톡톡 튀게 연출되었다면 훨씬 세련됐을 텐데. 오히려 너무 전체적으로 분위기를 띄워버려서 아예 세련된 B급이 되지도 못하는... 정말 8급 느낌의 극이 되어부렀다. 누가 ㄱㅈㅎ한테 자꾸 일거리 주나요, 왜...? 조도도 그렇고 검은색 오퍼시티 50% 정도로 끼얹으면 좋겠다.. 


4. 개인적으로 무척 깍지 끼인 발언이기는 하지만 이 극의 강약을 조절하는 건 절대적으로 비지터의 몫이라고 생각함. 비지터가 두려움과 불안함을 얼마나 강하게 심어주느냐, 더불어서 얼마나 중간중간 웃음 포인트를 터뜨리며 풀어주느냐에 따라서 극의 흐름이 확 달라질 것. 그런 면에서 고지터는 넘나 프로 어그로꾼...!!ㅋㅋㅋ 내가 리딩 때 보면서 진짜 이건 고상호 역할이다!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장난스럽게 굴면서 쿡쿡 찔러대는 거 넘 잘 어울림. 좀 더 무섭게 윽박지르면 좋겠지만 전체적으로 세 배우가 다 어린 느낌이라서. 그런 데에서 오는 중압감은 좀 덜했던 것 같음. 하지만 롱코트... 이하 찬양은 마지막에 몰아서 하고 일단... 안그래도 어린 느낌인데 남편이랑 아내의 의상도 개취로 너무 안취향. 전체적으로 극에 일관된 색조가 없는 느낌이었음. 아내의 초록색 꽃무늬랑 비지터 초록색 코트랑 깔맞춤일까..? 그냥 전체적으로 다! 채도 낮추고 밝기도 낮추고 싶어서 죽는 줄. 비지터 셔츠 색깔은 왜 그 하늘색이어야 했나요. 왜 남편의 수트는 어정쩡한 스투핏에 요상하게 밝은 그레이 하운드 체크인가요. 물론 개취로 미드나잇 최악의 연출 부분 1위는 파파 부분. 리딩 볼 때에는 극 최초의 암전 이후로 이어지는 부분이라고 해서 그냥 암전 속에 아내가 핀조명 하나 받으면서 감정선 최대로 보여주면서 노래할 줄 알았는데 그 되도 않은 퍼 코트(심지어 퍼가 풍성하지도 않아) 반짝이 숄은 뭘까. 그 마이크는 뭐죠. 느닷없는 미러볼 조명은...? 너무 진짜 개연성 없고 상징성도 없는 연출이었음. 차라리 그 이후에 비지터가 들고 나왔던 사과는 촌스러워도 앗싸리 직관적으로 '선악과'임을 보여주기나 하지. 진짜 그냥 보면서 ??? 물음표 땡땡땡. 같이 본 지인은 '갑자기 생활 어려워져서 밤무대 뛰는 줄요' 라는 감상평을 남겼다. 2번째로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은 남편과 아내가 춤출 때 벽 돌아가고 코러스들 나와서 춤추는 부분... 아주 밝은 느낌도 아니고 그렇다고 묘한 긴장감을 계속 유지하는 것도 아니고. 강제 신남...(심지어 안 신남) 강제 파티...(심지어 무대 위에만) 극 전반적으로 코러스까지 굳이 그렇게 춤을 많이 춰야 하나...? 를 고심했음. 리딩 때 상상하기론 아내랑 춤추는 부분이랑 뒤에 싸우는 부분(탱고 음악 깔리고), 그 외 한 장면 정도만 더 춤을 추겠거니.. 했는데 춤 많이 춰요! 라는 고배우님 말이 이정도로 많이 춘다는 의미인줄 몰랐어요...(동공지진) 지나치게 안무가 많고 지나치게 신나는 척을 해서 지나치게 극을 띄워. 그리고 그 탈... 소품들에도 좀... 일관성을 둘 수 없을까요...? 그 탈이 등장하는 순간 나는 급작스럽게 효도극에 끌려온 기분이 들며... 손자국이 투박하게 묻어난 그 탈은 마치... 부모님과 함께 보는 극의 톤에 어울릴 법한 그런... 최소 연희단 거리패 st....(저 연희단 거리패 공연 되게 좋아합니다...) 차라리 철제 가면이나 쇠 골조 같은 걸로 엮은 느낌이 극 자체에 어울릴 텐데 그 탈은 넘나 우리 토속 st. 말뚝이 개똥이 st. 아무리 센스는 돈 주고도 못 산다지만 휴... 코러스들 동선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너무 어수선함. 계속 보면서 어떤 분위기 어떤 방식으로 표현하고 싶었는지는 알겠는데 그 지점까지 절대 다다를 수 없는 공연을 보는 느낌이었음.


5.사실 남편과 아내 첫 만남 부분이랑 후반부 남편의 시대 설명충 부분은 잘라내도 정말 무관할 듯. 설명충 부분은 리딩 때는 그나마 남편 말에 좀 더 집중이나 되었지 무대에서 코러스/비지터까지 같이 있으니까 진짜 귀에 안 들어오더라.


6. 그래도 비지터는 진짜 깡패 캐릭터. 포인트 죄다 다 따먹는 역할. 롱코트 빙그르르 휘날리면서 턴하고 아내한테 찡긋대면서 추근덕대고 장난기 어린 행동 하는 거, 다 너무 잘 어울리고 고비지터 표정이랑 몸 쓰는 것도 넘 좋았음. 특히 무릎 꿇고 뒤로 넘어갔다가 그대로 올라오는 거! 는 트유에서도 봐서 속으로 올ㅋ 하고 말았는데(ㅋㅋㅋ) 완전 누웠다가 아내 잡고 쓱 올라오는 건 레알 낫닝겐미 쩔고요. 신도 악마도 아닌 존재, 모두의 집에 있을 법한 그런 손님. 고비지터는 진짜 무척 잘 맞는 캐릭터라고 생각했음. 오늘 첫공이라 다소 대사가 씹히긴 했으나👀 초록색 롱코트 입고 나와서 첫 넘버 부르는데 이건 거의 사찬에서 사내가 주는 임팩트 급이라고 봅니다. 휴, 제일 처음에 비지터가 2층 난간 가운데 걸린 사슴 헌팅 트로피 뒤에 서서 노래 부를 때 '권력자' '가진 자' 이런 가사에 맞춰서 양 옆에서 조명 한 번씩 쏴서 그림자 벽으로 드리울 때만 해도 오?! 했는데... 이 극에서도 여전히 조명으로 그림자 이용한 연출들이 다소 눈에 띄는데 효과적이진 않다. 특히 강조하고자 하는 듯한 플래시 조명, 그거 진짜... 난 첨엔 누가 플래시 터뜨리거나 조명 하나 나가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또 나오더라고 하하하...!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연출은 정말 핵ㅡ불ㅡ호.


7. 그리고 실상 스토리 라인 자체도 좀 널뜀. 무대 위의 배우들 감정선은 자꾸 엄청나게 고조되는데 정작 관객은 따라가기 힘든. 거기다가 아내의 성격 반전 역시도 단순히 '파파'라는 넘버 하나에서 보여지는 아내의 감정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들고. 그러니까 관객들이 아내가 도끼를 들 때, '토막 내야 해!' 했을 때, '두 눈을 다 뽑아버리는 건데!' 할 때 웃어버리지... 플레임즈가 하루짜리 리딩이었던 걸 감사히 여겨야 할 것이다. 플레임즈를 본 관객들이 더 많았으면 더 많은 사람들이 플레임즈를 떠올렸을 테니까...😑 그러다가 엔딩은 또 느닷없이 데빌이야. 아내랑 비지터가 마지막에 함께 추는 춤은 마지막 춤인가요. 지금의 현실이 더 지옥이다, 라는 메세지는 왜 갑자기 던져주는 건데, 쓸데없이. 어두컴컴한 분위기도, 재기발랄한 포인트도, 현실 비판적인 블랙 코미디 라인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루는 것 없이 어정쩡하게 버무려진 느낌이 되버린다고. 이건 리딩 볼 때도 했던 얘기지만ㅇㅇ...


8. 아내와 남편이 하필 또 헨탈리라... 님들 오르골 틀지마... 여기 굿맨가 같잖아...ㅇ0ㅇ!!!ㅋㅋㅋㅋㅋ 비지터 기둥 잡고 돌지마... 게이브 같다고....!!!!ㅋㅋㅋㅋㅋㅋㅋ


9. 여튼 배우들 전체적으로 나잇대가 더 높아져도 좋을 것 같았음. 개인적으로 정민씨도 비지터 역할에 잘 어울릴 것 같았고. 물론 지금 배우들도 다 좋았는데 극에 무게감이 너무... 부족해. 연출이 잘못했네...🙃


10. 그럼 이제 고비지터 찬양을 좀 해보자면(이미 많이 한 것 같지만 좋으니까 다시 한 번) 고비지터 강약 조절이 넘나 좋았다. 엔카베데다, 문 열어! 이거 음향 좀 더 키워서 확 깔아주면 더 좋을 것 같긴 한데 이건 연출 탓이야< 고상호 배우 몸 잘 쓰는 거 새삼 느꼈고요. 비율 쩔고요. 의상 캬아아...! 국방색 코트 돌리면서 춤출 때 넘 쩔고요! 아내 너무 가뿐히 들어올리는 것! 그리고 마지막에 검은색 제복!!!! 안대!!!! 모자!!!! 모자 조금만 덜 눌러써주세요. 안대 쓴 얼굴 좀 더 자세히 보고 싶으니까... 벨트로 허리 좀 더 잡아주면 좋겠지만 퀵체인지라 바쁘시조 알갰읍니다. 참고로 국방색 코트 단추는 9개고 검은색 제복 코트 단추는 11개..(집착) 하늘색 셔츠만 까만색 셔츠로 바꿔주시면 그 되도 않게 화려한 벨트는 중화가 될 것 같아요. 왜 하늘색이죠. 왜인가요. 퍼스널 컬러랑 안 맞는 것 같아요<< 여하간 비주얼도 몹시 완벽^^한데 본하 짬바로 아내랑 남편한테 어그로 넘나 잘 끄는 것! 캬! 그렇지 이런 어그로가 최고야!!ㅋㅋㅋㅋ 극과는 상관 없이 개인적으로 비지터가 내게 있어선 고상호 배우 캐릭터 중에 최애캐가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넘나 극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만면에 행복한 미소를 띠고 봐부렀네. 호호호. 고상호가 롱코트 입고 춤도 추고 어그로도 끌고 미친 놈처럼 굴다가 무섭게도 굴고 마지막엔 급 신이 되는디 왜 안좋아하죠, 제가...?ㅇㅇㅇ...


11. 첫공인지라 배우들끼리의 합이나 톤이 좀 안 맞은 부분도 있었지만 배우들은 금새 맞춰질 것 같고... 내가 연출과 화해할 수 있느냐, 혹은 연출을 어디까지 신경쓰지 않고 극을 볼 수 있느냐에 따라 미드나잇을 몇 번이나 더 볼 수 있을지 판가름이 날 것 같다.


12. 1열 중앙 쯤이었는데 목 안 아프고 좋았음. 남은 1열은 다 가도 될 것 같음.


13. 근데 진짜 여러분 고상호 배우 좋아하시면 한 번은 봐주세요. 고비지터 우주에서 제일 섹시하거든요?? 제가 극은 이렇게 오목조목 깠으니까 극은 신경쓰지 마시고 고비지터만 떼서 봐주세요 제발요... 고비지터 우주 섹시!!🤤





* 꿈보다 해몽 시리즈



1. 헌팅 트로피, 숫사슴의 뿔. 내가(아마도 대부분이) 미드나잇 무대를 볼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무대 정중앙에 걸린 헌팅트로피, 사슴의 거대한 뿔일 것이다. 공연 내에서 이 헌팅 트로피는 '각하의 초상'으로 취급됨. 숫사슴의 뿔은 원래 '절대 권력'을 상징하는데 극에 가장 잘 어울리는 상징이라고 생각함. 또한 영생 등을 뜻하기도 하는데 극의 배경이 되는 시대의 그 독재자의 권력은 마치 영원할 것만 같은 포악함을 가졌으니 역시 찰떡. 그와 동시에 이것이 제물이 된 사냥감의 박제로써 걸려있다는 게 난 참 재밌고 좋음. 사냥의 대상이 누구일까, 를 생각해보면 역설적인 의미로도 살릴 수 있을 것 같아서. 헌팅 트로피는 폭력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되려 역설적으로 박제로만 남겨진 독재의 상징이 될 수도 있으니.


2. 선악과와 꽃. 요새 종종 커튼콜 마지막에 아내를 데려가는 장난스런 비지터들의 모습이 하데스와 페르세포네로 비유되기도 하는데 극에 아주 잘 어울리는 비유라고 생각함. 특히나 페르세포네가 '꽃'을 좋아했다는 점까지 들면. 제일 첫 장면에서 여자는 두 종류의 꽃을 들고 등장해 무대 위 두 개의 화병에 각각 꽃을 꽂는다. 페르세포네는 들판에서 꽃을 따다가 하데스에게 납치 당했었고, 이 극의 엔딩에서도 여자는 비지터에게 타의 혹은 자의로 끌려가게 되니까. 벽의 뒤로 말이야. 이 꽃은 남자가 여자와의 첫 만남을 떠올릴 때, 여자가 엔카베데가 떠나는 장면을 창문에서 목격할 때 사용되는데 이후 그 꽃이 비지터의 손에서 버려지는 점까지 이어져 보면 극의 흐름이 꽃 한송이에도 꽤 명확히 드러나는 셈. 특히나 소파 옆에 꽂혔던 꽃은 파파 넘버 이후에 사라지는데 그 꽃이 꽂혔던 화병에 비지터가 등장해 사과를 넣어둔다는 것도 역시 재미있다. 사과는 전에도 한 번 얘기했듯이 극 중에서 너무도 명확하게 선악과의 역할을 하는데(심지어 가사에도 등장. 선악과 두 번 먹으라며) 페르세포네의 꽃 대신 그 자리에 위치하는 선악과, 무엇이 악인지 알게 해주는 상징,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가려뒀던 장막을 걷어내버리는 비지터의 역할. 쭉 이어지는 맥락인 것. 그리고 20일 공연에서 고비지터가 여자와 춤을 추다가 실수로 그 꽃을 건드려서 떨어뜨려버렸는데 덕분에 재미있는 장면이 완성됐다. 어쩔 줄 몰라하고 꽃을 집어들고 안절부절 못하던 남편에게서 비지터가 꽃을 뺏어들어 화병에 꽂고는 툭 건드리는데... 사실 실수에서 비롯된 애드립이지만 꿈보다 해몽적으로 보면 무척 재미난 상황인 것!ㅋㅋ 꽃을 다시 꽂았다가 없애버리다니, 비지터가 더 못되고 장난스럽게 느껴지잖아. 껄껄껄!! 비지터는 상대를 골릴 수 있는 데까지 골리고 몰아붙일 수 있는 데까지 몰아붙여야 재미진 것(내취향)... 여하간 여자는 결국 꽃이 아니라 선악과를 택했으니.


3. 춤. 이 극에선 꽤나! 춤이 많이 나오는데... 개인적으로 불호인 부분도 있지만 여튼 인물과 인물들 사이의 관계를 정립하는 용으로 사용된 건 확실해서. 우선 아내와 남편의 사랑을 표현하는 두 사람의 춤. 그리고 여자와 비지터의 첫 만남에서 보여주는 춤. 마지막에 키스로 끝나는 것까지 비지터와 여자의 사이에 이어질 관계가 살짝 엿보이는 장면이라고 생각. 이후 비지터의 남자에 대한 폭로에서 엔카베데와 춤추는 남편. 그리고 여자에 대한 폭로 직전 여자와 비지터의 춤. 이 부분은 여자가 숨겨둔 감정이 폭발하는 장면이고 여자가 다소 과장스럽게 감정을 토해내듯 대사를 치는 것도 자신도 몰랐던 감정들이 이끌려 나오는 과정(이라고 합리화). 여기서 속내가 훤히 까발려지면서 (뛰어넘고) 비지터와 부부가 싸우는 장면. 여기서 남자와 비지터는 단순히 격투(라기엔 비지터가 일방적으로 우세한)지만 여자와 비지터는 명백히 함께 춤을 추는 것. 여기서 내가 떠올린 건 엘리자벳의 마이얼링과 마지막 춤. 장면이 가지는 의미가 비슷한 느낌. 그리고 마지막 장, 비지터가 아내를 선택하는 장면에서 흐르는 노래는 아내와 남편이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리던 장의 노래. 남자와 여자의 관계에서 비지터와 여자의 관계로. 나는 비지터를 어떤 실체로 인식하진 않아서 이 공간 자체도 실질적인 공간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음. 이건 다음 챕터로.


4. 개인적으로 비지터는 어떤 실체를 가진 존재가 아니라 둘 사이의 죄책감이나 불안감, 공포의 표현이라고 생각함. 그래서 처음 봤을 때 마지막 장면에서 뭐여 이건 데빌이여? 비지터=엑스여? 이랬던 거고. 그런 의미에서 둘의 집, 이 공간 자체도 정말 실존하는 공간이 아닐지도 모르겠단 생각도. 남자가 창문 밖으로 뛰어 내리는 것이 정말 죽음이라기 보다는 자유, 탈출의 의미가 더 크잖아. 여자는 문이나 창문을 통해 바깥으로 나가는 게 아니라 집 자체로 스며들어버리고. 그래서 이 모든 것은 여자와 남자, 혹은 둘 중 한 사람의 머릿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고 둘이 있는 공간은 둘에게 가장 친숙한 장소이며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하지만 항상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갇혀 있는' 자신들의 집으로 표현됐을 뿐 사실은 그 무서운 지하 감옥에 있는 게 아닐까, 이미... 그런 생각을 한다. 먼저 끌려나간 쪽은 남자이고 남은 쪽은 여자. (내가 무척이나 안 좋아하는)두 개의 탈이 나타내는 얼굴들이 정말로 변호사 남편과 아내일까? 남자와 여자일 수도 있지 않을까?


5. 여자와 아버지. 사실 이 극이 절정으로 치닫는 데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부분이 여자가 아버지에 대해 가진 감정, 그것을 비지터가 건드렸을 때 폭발하는 까닭을 관객들이 이해하고 따라가야 하는데 이 극은 그게 너무 부족해 관객들이 플레임즈를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B급이 아니라 8급으로 보이게 하는 여자의 너무도 크게 튀어버리는 성격 반전... 결국 관객들은 역으로 극에 흩어져 있는 단서들을 모아 여자의 과거를 추리할 수 밖에 없는데... 관객을 셜록으로 만들어주려는 연출의 큰 그림은 아니었을까...(는 개뿔) 여자의 심리 상태에 대한 단서는 그래도 찾아보면 꽤 나오긴 하는데('찾아봐야 한다'는 점에서 이미 fail이지만) 우선 여자는 혼자 있는 것에 대한 극도의 공포감을 느낌. 이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대숙청에 노크 소리에 대한 발작으로 볼 수도 있지만 과거에 비슷한 일을 겪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함. 좀 더 나가면 비지터랑 여자가 어린 시절 만났을지도...? 최소한 그녀의 아버지는 비지터를 만났을 테니까. 자꾸 쓰다보면 엘리자벳 생각이 나...😒 여하간 그녀가 그런 불안한 심리 상태에서 의존하는 것은 오르골의 음악 소리. 이것은... 다이애나 굿맨...!! 이 아니고 추억의 물건으로 추정됨. 여자의 아버지는 황제 재위 시절 최고의 신문관이랬으니 그녀는 황제가 폐위되면서 그녀에게 가장 소중한 추억들로부터 축출 당했을 것. 여자는 음악과 춤을 좋아하는데 이는 오르골-LP판과도 이어짐. 더 나가서 아마도 시골 마을로 도망쳐 자라난 여자는 가수 생활을 했던 게 아닌가, 하는 추측들도 있는데 이는 파파 장면에서의 마이크+숄, 남자와 전단을 돌리다 만났다는 부분 때문. 여하간 이런 것들은 그녀에게 안정을 줄 수 있는 과거와의 끈이고 여자를 간신히 버티게 해주는 부분들이었는데 비지터가 나타나 그것들을 짓밟음으로써 여자는 말 그대로 이성의 끈이 뚝 끊긴 셈. 극 중에서 여자의 '어머니'에 대한 언급은 1도 없는 것으로 보아 어린 시절 돌아가신 것으로 추정.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결국 여자가 맺고 있는 관계는 죄다 남자들과의 관계 뿐... 과거를 지배하며 여자의 무의식적 감정을 지배하는 아버지(이드), 현실의 생활을 종속한 남편(에고), 묻어둔 죄책감, 도덕심을 일꺠우는 비지터(슈퍼에고). 셋이 다 남성형으로 나타나는 건... 여기서 굳이 페미니즘적 시각까지 들어갈 필요는 없겠지만 여튼 비지터는 여성형이 되어도 아무 상관 없겠다는 결론. 언니 둘이서 탱고 추는 것도 좋아요🙆🙆 왜 여기까지 왔지. 여튼 이런 상황에서 아버지(와 과거의 추억들)는 여자에 기반 그 자체인 것. 그리고 사실 현재의 생활이 여자에게 마냥 행복하지는 않거든. 어린 시절 이야기 들어보면 여자 꽤나 활동적인 사람이었고 과거 정말 가수였다면 더더욱이나 지금처럼 남편만을 기다리며 하루종일 신경 곤두서서 집안에 갇혀지내는 것은 결코 여자가 원하는 삶, 행복한 삶은 아닌 것. 그렇기 때문에 비지터가 나타나 과거를 깨뜨리고 현재까지 깨뜨리는 것은 여러의미로 여자에게도 억압에서의 탈출이 되는 것. 이것이 여자가 이드와 에고를 거쳐 슈퍼에고로 나아가는 자아의 성장 과정... 을 그렸을 리는 없지... 쓰다보니 약간 현타가 오는군...😒 여하간 비지터가 건드리는 것들, 여자가 격분하는 까닭은 이런 데서 대충 찾을 수 있을 듯. 그리고 비지터의 '시선'에 대해서 여자가 특히 예민하게 반응하는데 이는 그녀가 다른 사람들의 여러 시선에 상처입었단 과거를 드러낼 수도. 여자는 몰랐겠지만(혹은 모른 척 했겠지만) 그런 아버지의 딸이었고 황제 폐위 이후에는 노동자들의 시선도 더욱 따가웠을 것이며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다면 그 역시도 온갖 종류의 시선을 받았을 테니까. 비지터의 눈을 뽑아버렸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어한다는 뜻이었겠지. 여자 스스로, 그 자체로서 자립하겠다는 의지... 도 많이 나갔군. 여담이지만 러시아 혁명(황제 폐위)는 1917년, 극의 배경은 1937년. 파파에서 말하는 14살(이 맞지?)의 마지막 행복한 추억이 저 쯤이라면 지금 여자는 대략 34살 전후가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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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0819



1. 커다란 집 모양의 무대 세트, 무대 위 집 모양의 블록. 집에서 상처 받은 아이들, 무너진 아이들이 무너뜨린 집들. 무너진 집에 있었던 또 한 사람. 결국 이 이야기는 그런 이야기.


2. 맷의 감정은 숨가쁘다. 쉴새없이 다른 감정으로 돌변하고 널뛰며 온몸으로 표현해야 하는 맷과 관객의 입장에선 공연 초반과 후반의 느낌이 전혀 달라야 하지만 사실은 한 가지 감정으로 서있는 조안, 그리고 그 전부를 바라봐야 하는 유진.


3. 필석유진이 제일 마지막 장면에서 자신의 책상 위를 정리할 때 꼭 어느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느껴졌다. 그때 보이던 긴 감정의 끝. 배우 본인도 원래 감정선이나 호흡 자체가 길고 느린 편인데 어제 그 장면에서 그 긴 감정선이 딱 어우러진단 생각이 들었다. 계속되어져 온 괴로움이 거기서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장면.


4. 우린 진화한 거예요. 한 사람의 고통을 한 사람만이 온전히 책임질 필요가 있을까? 그러나 누군가는 고통만을 견뎌야 하는 것은 옳을까. 자라지 못하는 아이들, 온전히 가질 수 없는 내 몸의 기억. 이 극 안에서 이타적인 누군가는 없다.


5. 벽에 달린 조명들은 그들 사이의 신호. 맷의 신호만이 느리게 깜빡인다.


6. 우디, 라는 이름. 토이 스토리. 그리고 어른은 장난감을 더이상 가지고 놀지 않는다, 는 조안의 말. 버려지는 존재의 외로움과 괴로움은 얼만큼인가. 더군다나 그 장난감이 살아있다면.


7. 그럼에도 애너벨 리, 그의 사랑은 오로지 한 사람 뿐이라서. 맷의 모든 세상은 조안이 아니면 돌아가지 않기 때문에. 그의 모든 까닭과 감정은 오직 조안에서만 비롯된 것이므로. 그래서 조안을 향해 쏟아진 맷과 아이들의 각각 다른 감정과 행동들도 결국은 한 가지 이유겠구나, 하는. 그리고 그걸 섬세하게 구분해서, 또한 연결해서 연기해내는 배우의 힘.


8. 그러나 아쉽게도 이 극이 내 취향이 아니며 내게 뭐가 부족하게 느껴지는지 계속 생각하게 되더라. 단순하게 말하면 필요 없는 사족들이 많다고 느꼈고 이전의 다른 극들이 떠올랐으며 그 이상의 무엇인가 내게 오지 않았으니까. 다소 아쉬웠다. 


9.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몸이 가졌던 이름은 무엇이든 그들은 사실 누구라도 자신 스스로니까. 그래서 다른 이름들도 중요하지 않다. 레이첼, 예쁜 이름이지만 그들에겐 언제라도 사라질 수 있는 이름.




* 다중인격 소재 극들에 대한 잡담



1. 우선 다중인격 소재의 극들이 가지는 기본적인 구조는 <과거의 충격-인격의 분리-1. 아는 인격/모르는 인격 분리 2. 인격들끼리의 주도권 다툼 등-내가 다중인격이라니! 내가 너라니! 나 말고 또 누가 있다니! 등의 충격> 은 기본적으로 잠재되어 있다고 봐야한다. 정말로 한 몸 안에 두 사람이 존재한다, 는 설정이라면 다중인격이 아니라 빙의로 봐야할 테니까. 다중인격이라는 설정을 전제로 한다면 주인격이 어떤 심리적 충격(혹은 강한 욕망)이란 과거가 필수적으로 따라오니까. 그런 의미에서 트유나 인터뷰에선 그런 부분들이 명확하다. (이하 모두 내 해석에 따름.) 트유에서 인격이 분리된 것은 아저씨에게서의 학대, 부모에 대한 복잡한 감정(아버지에 대한 동경/열등감,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증오/사랑) 등이 요인이 되어 자신과 정반대의 인격을 만들어낸 거라고 생각. 노래를 하는 아이/곡을 만드는 아이, 기억을 못하는 아이/기억을 하는 아이. 죽인 아이/죽음을 감춘 아이. 다만 트유에선 우빈과 본하, 둘 중 누가 주인격이라는 얘기가 없다. 이모씨, 라는 힌트는 있었지만 사실 인격이 둘만 있겠냐던 달중쌤의 말처럼 더 많은 인격들이 숨어있을 수 있는 것이고 혹은 그 둘 마저도 또다른 주 인격을 위한 보조 인격일 수도 있는 것이니까. 여하간 나는 우빈이 주 인격이고 그가 저의 정반대 모습으로 만들어낸 게 본하라는 해석을 좋아하는 편이라 작년 재뉴 해석이 재밌었고 둘의 캐릭터 껍데기도 좋아했다. 자신이 갖지 못한, 너무도 원했던 모든 것들을 다 가지고 있는 나의 모습, 을 너무도 사랑하고 아끼는 우빈과 그와 정반대되는 모습으로, 너무도 반짝반짝하고 당당하고 뻔뻔하고 사랑받을 줄 아는 본하의 모습이라 좋았다. 욱본하 반짝반짝 아이돌적 모먼트 너무 좋음. 그 당시에 저 모먼트<< 란 말이 통용되기 전이라 이제 와서 아쉽다. 그니까 지금 실컷 써야지. 외형적으로도 정반대인 둘의 상반된 >모먼트< 존잼이었다고!!!(현실: 유니콘 페어) 여튼 트유에서는 저런 우빈의 강렬한 욕망이 대비되어지는 포인트가 좋았다. 그게 극의 개연성이 된다고 생각하고.


반면 인터뷰는 드러나는 사람이 하나고 그 안의 여러 인격들을 다채롭게 전시한다. 이 극에 있어서 반전 포인트는 짠, 나는 사실 다중인격이야! 가 아니라 짠, 사실 내가 제일 충격 받은 건 나의 어릴 적 학대 때문만이 아니라 조안 때문이란다! 그게 모든 일의 원천이지! 같은 느낌인데 이게 의외로 임팩트가 안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후반부 흐름에 묻힌다고 해야 하나. 그리고 그 충격 구조가 이미 블이라는 극에서 겪었던 것과 몹시 유사한 구조라서. 중심 소재는 다르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도 비슷하고 서사 구조에 유사성이 있고. 이미 내가 너무 다 알고 봐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지만. 여하간 그래서 좀 아쉬웠다. 그래도 각 인격들이 가지는 의미나 그들이 상충되는 시점, 그래야만 하는 까닭들을 파보기엔 꽤 재밌는 텍스트라곤 생각한다. 몹시 세련되고 아주 훌륭한 텍스트들로 가득 차있다곤 생각하지 않지만 재미있을 수 있는 극, 까지는 이해함. 우선 이 극에서 맷은 해리성 인격 장애를 앓고 있다고 못박아주는 이상 모든 인격들은 노네임의 말과는 달리 안타깝게도 모두 맷을 위한 인격들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그러나 물론 여기서도 한 번 더 비틀어서 그렇다고 해서 결국 맷이 모든 인격들을 통합할 것인가, 에 대해선 의문점을 가질 수 있을 것. 유진이 끝까지 그를 치료하려고 하는 것은 그의 말대로 또다른 가정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임도 있겠지만 어떤 유진의 노선에 따라서는 그를 치료해서, 모든 것을 기억하는 한 인격을 만들어서, 그것이 아주 오래 전 맷이라는 인격과는 다를지라도, 혹은 살인을 저지른 그 맷이 아닐지라도, 그 죄를 물을 수 있는 어떤 한 인격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결국 누가 그 몸을 차지하게 될 것인가, 그 전까지는 '...사람들, 이라고 해야 하지 않나?' 는 여담이고. 여하간 각자 이유가 있어서 맷을 위해 생겨난 인격들인 것이다. 어린 시절의 상처를 그 시절에 그대로 가둬둔 우디, 조안 때문에 생겨난 앤(조안도 결국 아픈 아이라는 것. 겨우 4살 어린 동생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기엔 조안도 너무 어렸다) 등, 각자 혼자 감당하기엔 너무 큰 고통을 분담하기 위해 나뉘어진 인격들이다. 그래서 이들이 나는 맷이 아니라 누구라고 외친다해도 그것은 맷을 보호하기 위한 몸부림. 각자 고통을 분리해 겨우 가볍게 만들어뒀는데 사실 그게 다 뭉쳐졌을 때 얼마나 큰 무게인지 깨닫게 해버리면 인격을 분리한 의미가 사라지게 되는 것. 고통의 무게는 몇 배가 되는 반면에. 노네임은 사람들, 이라고 하지만 동시에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고도 말한다. 극의 앞부분이 이름에 관한 이야기를 여러 번 하면서 이름은 내가 붙이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 누군가가 붙여주고 그렇게 불려져서 만들어지는 것이란 말과는 달리. 왜냐하면 맷 안에 다 있는 거니까. 그들을 나누어 다른 이름을 불렀어도, '이름이 뭐가 중요해요.' 이미 하나인데. 그들 가장 밑바닥엔 결국 원초적으로 가장 중요한 본능, 고통을 피하고 싶단 생각이 기저에 있는데. 결국은 맷의 고통과 필요해 감응하는 것이 그들이니까. 여기까지 오면 맷의 모든 행동들은 결국 그들의 방어 기제라는 점에서 설명이 된다. 그러나 이 극은 그게 중점이 아니라 사실 유진이 키를 쥐고 있다고 봐야 한다. 결말을 완성하는 것은 그의 몫이기 때문에. 사실은 (맷의 화려한 인격쇼에 가려져서 잘 도드라지진 않았지만) 그의 선택이 이 극을 이끈다는 점. 그래서 심지어 다중 인격+여자의 죽음이라는 두 개의 구조가 비슷하면서도 트유와 전혀 다른 극이 된다는 것.


단순히 무너진 한 가정, 학대와 폭력, 그로 인해 발생한 사건들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또다른 무너진 가정을 부각시키게 된 것이다(특히 이번 시즌의 레이첼 설정으로 인하여 더욱). 그런데 개인적으로 어떻게 보면 재밌는 점이 되려 그 중요한 후반부 유진의 부분이 사족처럼 느껴졌다는 것. 어제 얘기했듯이 페어막에서 필석유진이 자신의 방을 정리하는 부분이 긴 영화의 끝부분처럼 느껴졌다고 했는데 결국 엔딩을 장식하는 건 유진이라는 점에서 그가 사건을 수사하고 정리하고, 제 감정들을 고민하는 그 시간이 당연히 그정도의 무게감이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 이어서 볼 때 나머지 장면들이 사족처럼 느껴진다는 건 그 앞부분에서 유진에게 그만큼의 무게가 실렸다고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 이야기 구조 배치가 효과적이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되겠지, 최소한 나에게는. 맷의 이야기와 유진의 이야기가 좀 더 촘촘한 얼개로 얽혔다면 더 재밌는 이야기로 느껴졌을 것 같다. 아무래도 관객은 레이첼의 비극보다 맷의 이야기에 더 끌리기 쉬운 극이라서. 역시 여담으로 유진과 비슷한 롤을 가진 캐릭터로는 잭더리퍼의 앤더슨, 이 생각났다. 이쪽도 구조가 비슷하지. 맷에게 레이첼을 잃은 유진 / 잭(그리고 다니엘)에게 폴리를 잃은 앤더슨. 그러나 그들이 선택하는 결말이 정반대라는 점에서 내용과 방향이 달라지고. 유진과 레이첼의 이야기도 중간에 한 번 맷의 이야기와 겹쳐져 등장했다면 후반부가 좀 더 살았을 텐데. 그게 아니면 아예 쳐내든가. 이도저도 아니게 되버려 되려 전체적인 조임이 늘어진 느낌. 영화였다면 유진이 사무실을 정리하는 장면 / 지치고 갈등으로 가득한 눈빛으로 끝나고 최면을 거는 장면은 정말 쿠키로나 등장해야 할 것 같았다. 혹은 유진과 맷이 차라리 더 격렬하게 다투던가. 쓰다보니 내가 왜 이 극이 재미가 없을 텍스트는 아닌데 미묘하게 아쉽다고 느꼈는지 알겠다. 이래서 아무말이라도 글로 써서 정리하는 습관을...(공해) 


마지막 여담. 그래서 사찬에서 사내가 우진의 다른 인격이라는 해석이 재밌는 게 인격이 바뀔 트리거가 완벽하니까. 우진이가 느끼는 자신의 사상에 대한 열망, 집안에 대한 좌절감, 시대에 대한 죄책감이 사내라는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설정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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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벨탑, 진리, 아름다움, 변화, 주변인, 실종, 정글, 새, 나무로 만든 새, 손, 죄악, 친구, 형제, 아버지... 학교 2013(?)...



2. 박용호씨의 덕질 칭찬해. 정말 이건 돈을 벌기 위해 올린 극이 아니더라고. 본인 보고 싶은 거 신나게 올리신 느낌. 그리고 정말 페어 간의 합이나 무게가 잘 맞아야겠단 생각이 많이 들어서. 크로스 하나 없는 것까지도 박용호스러웠다. 빙고박 👏👏👏



3. 이 말은 하고 시작할게요... 이상이 잘생겼다!! 최재림 섹시하다!!



4. 타지마할은 바벨탑 아름다움은 진리. 1막에서 두 사람이 묻는 것은 과연 진리가 통제될 수 있는가. 지고지순한 진리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는가. 하나의 진리가 영원히 존재할 수 있는가. 하나의 진리가 우뚝 섰다고 해서 다른 진리들은 사라질 것인가. 공연이 올라오기 전 시놉들을 찾아보면서 휴마는 보수적인 인물, 체제에 순응하는 인물로 바불은 진보적인, 개혁을 꿈꾸는 인물로 캐릭터를 그렸었는데 실제 공연 안에서는 그보다 더 복잡하더라. 휴마가 현 체제에 순응하는 인물인 것은 맞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지금 이 현실에서 멀어지지 않는 것. 주위의 어떤 것도 잃지 않는 것. 그리고 그 안에는 당연히 바불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휴마는 약하다. 그에게 가장 강압적인 것은 그의 아버지. 그의 아버지는 황제와 비슷한 의미를 가진다. 절대로 거역할 수 없고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사람. 늘 그에게 억압되어 살아왔고 늘 하고 싶은 모든 것들을 그에게 잃어왔기 때문에 좌절한 사람. 그냥 이 삶이 행복한 척하면서 살고 싶은 사람. 정글에서 살고 싶지 않다고, 도시가 더 좋다고 했지만 사실 그는 늘 정글을 꿈꾸는 사람이다. 정글을, 그리고 바불을. 그는 자신의 세계에서 툭 튀어나와 있는 바불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해왔다. 그의 지각도 늘 봐줬고 그의 수다도 늘 받아줬다. 그를 돌보는 것에 가장 익숙한 사람. 그러나 자신이 그를 지키기 위해 했던 행동이 그를 가장 고통스럽게 만들 수 밖에 없다는 사실에 모든 것을 잃는다. 거기까지 휴마는 오로지 자신의 생각으로 움직였다. 그것이 휴마의 생각에 바불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불에게도 그랬을까? 둘은 친구이고 형제였지만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에게 닿지 않았단 생각이 자꾸 들었다. 사실 원작에서는 마지막 부분에 휴마가 넝마를 입은 바불을 만난다는 얘기를 이미 보고 갔는데 나는 이 부분이 사라진 게 더 좋으면서도 괴롭더라. 저렇게 바불을 아끼고 씻기고 입히고 모든 것을 해줄 수 있던 사람이 결국 제 손으로 그의 손을 자른 후엔 그를 잃어버렸다는 것이, 바불이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 그래서 늙어버린 휴마는 영원히 어린 개구장이, 백단향 뗏목 위에서 영원히 실종되고 싶어하는 소년을 그린다는 것이. 


휴마는 체제 속의 사람이다. 그는 황실 근위대 대장의 아들이고 그의 아래에서 엄격하게 자라왔다. 왕, 그리고 그의 쪼금 뒤, 그 언저리에서 살아온 사람. 자신이 누리고 있는 것이 어디에서 오는지 아는 사람. 반면 바불은 휴마가 얘기했던 그 세계의 언저리에서 살았던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체제의 속박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그에게는 도시도 신도 황제도 구속력이 없다. 오히려 그가 구속되는 것은 휴마다. 휴마가 자신을 위해 노력하듯 바불도 그를 따라가준다. 아마도 휴마가 없었다면 정글에서 길을 잃었을 때, 그는 영원히 실종되었을 것이다. 아니, 그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그는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휴마를 위해서 돌아왔고 그와 함께하기 위해 그 일을 계속해왔다. 그러기 위해서 그는 끊임없이 수다를 떤다. '말이라도 하지 않으면 어떻게 견딜 수 있겠어.' 바불은 인간의 힘과 도약을 꿈꾼다. 그에게 신도 황제도 손에 잡히지 않는 허상에 가깝다. 그는 눈에 보이는 것들을 사랑한다. 별에 닿고 싶어하고 무엇인가 만들고 싶어한다. 황제보다는 사람들에게 가까운 아이사를 믿는다. 


휴마에게 그런 바불은 동경의 대상이다. 휴마 역시 자유롭고 싶고 바불처럼 좋은 발명품을 생각해내고 싶다. 그러나 바불은 그런 휴마의 다 알지 못하는 듯하다. 그의 천진난만함은 새처럼 자유로운 매력이지만 동시에 독이 되기도 한다. 아리사. 휴마는 새를 잘 안다. 울음 소리만 듣고도, 모습만 보고도 그 새가 어떤 새인지 안다. 그런 새들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새들의 날갯짓을, 그들의 자유로움을 동경한다. 그러나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새에 대해 공부하고 그 새를 나무로 조각하여 곁에 두는 게 고작. 그런 새의 속성을 가진 쪽은 바불이다. 마지막, 휴마의 회상 속에서 뗏목 위에 올라가 먼 호수를 가리키며 영원한 실종을 꿈꾸는 어린 바불의 모습은 금세라도 날갯짓을 하며 날아갈 듯이 자유로와 보인다. 휴마는 바불의 시선을 따라 영원히 잊지 못할 새들의 비행을 본다. 그것은 혼자 남은 휴마에게 영원히 기억될, 어떠한 낙원의 원형이 된다. 혼자 성벽에 남은 바불은 아마 새들이 날 때마다 생각했을 것이다. 그때, 그 정글에서 우리가 실종되었더라면. 휴마가 정말 그 정글보다 도시가 좋았던 건 아닐 것이다. 휴마는 두려웠던 것이다.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던, 중심 바깥의 삶이. 여태껏 다 아는 척, 잘 적응한 척 살아왔던 현실과 다른 바깥의 삶이. 그러나 바불을 잃은 후 그는 언제나 중심에서 바깥을 그리워하며 살게 되었다. 홀로 너무 빠르게 늙어가면서. 


타지에서 두 사람이 서로에게 필수불가결한 존재인 것이 보통 한 쪽이 휴마처럼 현실에 얽매어 있는 캐릭터가 되면 다른 한 쪽은 마냥 이상향, 도달해야 할 존재, 어떤 완벽한 환상의 존재가 되기 쉽다. 그러나 바불은 휴마가 존재하기 때문에 그렇게 남을 수 있는 존재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중심의 존재에게 보살핌을 받고 있기 때문에 그는 여전히 그렇게 천진난만하고 자유롭게 남아있다. 휴마가 곁에 없었다면 그는 진작에 도로 언저리 바깥, 세상의 너머로 밀쳐졌을 성향인 것. 휴마가 들어주지 않았다면 그의 수많은 수다는 그저 허무한 메아리로 그쳤을 것. 바불도 그것을 알고 있다. 나는 아름다움을 잘라내고 없애버린 사람이고 너는 그것을 치유해준 사람이라고 얘기할 때, 그것은 휴마의 말처럼 홀로 모든 걸 해버렸다 괴로워하는 바불의 이야기임과 동시에 바불에게 있어서 휴마의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치유해주는 사람, 돌봐주는 사람. 휴마와 바불은 그렇게 다르면서도 그렇기 때문에 서로가 필요하다. 그러나 결국 체제는 개혁의 손을 자른다. 명령이기 때문에, 4만 개의 손을 자르고서도 자랑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합리화하던 휴마는 단 두 개의 손을 자르고 그대로 모든 걸 잃어버린다. 그것은 휴마에게 있어 최초의 반항이었으나 바불에겐 죄악의 씨앗이었다. 둘은 가장 중요한 곳에 있어서는 서로에게 닿지 못했다. 그럼에도 만약 휴마가 바불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가지마, 하고 제 잘린 두 팔을 붙들고 울부짖던 바불의 목소리를 듣고 돌아와 그때까지 했던 것처럼 바불을 돌보았더라면 아마 휴마는 그렇게 홀로 늙어버리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바불의 손을 스스로 자름으로써 휴마의 세계는 모두 무너진다. 자신이 옳다고 믿어왔던 모든 것들을, 몰래 의심조차 하지 않으려 부단 애쓰던 것들을 모두 잃어버린다. 휴마에게 내려진 영원한 형벌. 극은 휴마로 시작해서 휴마로 끝난다. 바불을 기다리는 휴마로 시작해서 바불을 떠올리는 휴마로 끝난다. 그것이 아마도 메세지일 것이다.


휴마는 현실의 사람이고 바불은 공상의 사람이다. 휴마는 발명품마저 현실에서 사용할 합리적으로 쓸 수 있는, 음식을 넣어놓거나 사막에서 시원하게 지낼 수 있는 운송용 구멍이다. 반면 바불은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것들을 꿈꾼다. 떠나고 싶어한다. 그것은 바불의 현실이 괴롭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 바불에게도 휴마를 제외한 나머지 현실들은 모두 고통이었을 것. 여자와 관련된 이야기를 바불이 몇 번 하는데 특히 '마음이 따뜻한 창녀'라는 이야기, 아이사가 먼저 언급했다고는 하지만 바불이 그 이야기를 몇 번이나 꺼내는 건 아마도 그의 가족과 관련된 이야기가 아닐까 했다. 휴마의 아버지는 계속 언급되는 반면 바불의 가족 이야기는 없다. 바불에게 유일하게 가족과 같은 존재는 그의 바이, 휴마 뿐인 것이다. 그래서 바불은 '마음이 따뜻한 창녀'들을 그리워한다.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들을. 휴마 말고 바불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테니까. 휴마는 가지 말았어야 했다. 어제 키워드에 학교 2013 적어놓은 게 바불의 저 '가지마' 때문에. 흥수가 다리도 망가지고 축구도 잃고 자기 곁에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었을 때, (남순이) 너라도 내 곁에 있었어야지, 하면서 눈물 뚝 흘리던 게 저 순간 확 떠올라서. 손을 잃은 것은 죄악이라고 얘기하던 바불에게서 손을 빼앗았을 때, 휴마는 그 곁에 있었어야 했다. 아마도 휴마는 4만 개의 손에서 느끼지 못했던 죄책감 때문에 제정신으로 그 곁에 있을 수 없었던 것이었겠지만 그래도, 있었어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이 이야기는 나를 아주 괴롭히는 거지만.


마지막, 홀로 성벽을 지키고 서있음에도 바불이 서있던 한쪽 부분은 비워둔 채로, 10년 만에 굽어버린 자세로 늙은 휴마윤이 거기에 혼자 서있다. 모든 걸 잃어버렸기에 그에게 시간은 더욱 지루했을 것이며 더 빨리 그를 늙게 만들었을 것이다. 휴마는 자신의 소년기를 잃어버렸다. 여전히 정해진 예법과 규칙에 따라 칼을 받쳐들지만 그것마저도 관성에 가까운, 아주 오래된 인 같은 것. 그렇게 늙고 지친 휴마에게 새소리가 들리고 그것은 그의 자세를 곧게 만든다. 과거로 이끈다. 너무도 소년 같은 얼굴의 바불이 그의 위에 껑충 나타나고 휴마는 그제서야 다시 어려진다. 재림휴마와 상이바불이 이 부분에서 정말 좋았던 게 상이바불은 정말 너무나 한없이 소년 같았고 재림휴마는 그의 소년스러움을 너무도 사랑하기에. 상실과 대비가 더 크게 느껴지는 페어 조합. 날갯짓의 장관 아래에서 휴마는 '바불처럼' 외친다. 아리사. 



5. 오늘 관대에서 나온 운송용 구멍과 마음이 따뜻한 창녀, 가 바불을 안정시키기 위해 나온 조크라는 얘기는 당연히 맞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얘기가 결국 왜, 그 순간에 툭 튀어나왔을까 하는 거. 그런 순간에도 떠오를만큼 늘 담고 있던 생각이기 때문이겠지. 늘 발명품 얘기를 눈 반짝대며 늘어놓는 바불을 보며 휴마는 저도 한 번쯤, 그런 얘기를 해보고 싶어 몰래 운송용 구멍이라는 걸 생각해왔을 거고 말해놓고 나니 나중엔 또 부끄러워 늘 내가 너보다 못하다고 화도 내고. 그런데도 바불은 나는 내 비행기보단 네 운송용 구멍이 훨씬 좋다고. 주머니 얘기도 좀... 어떻게 보면 낯간지럽지만 결국 휴마가 늘 가지고 다닐 그 주머니에 자기가 들어가있겠단 거 아니냐, 정말! 주머니가 두 개면 된다는 것도, 둘이라는 것, 연결된다는 말.



* 상이바불의 '씻겨주는 것이 강압적이다'란 말에 동의하는 게 결국 다시 그 옷을 입고 다시 다음 날 새벽 성벽 앞으로 돌아오잖아. 휴마는 바불을 달래려 모든 노력을 다했지만 사실 바불의 상처를 치유할 순 없음. 둘의 관계는 아름답지만 비극적인 아름다움. 서로 결코 같을 수 없는. 바불도 휴마를 사랑하고 존중하기에 거기에 순응하지만 결국 쌓이고 쌓인 게 터지는 게 뒷부분이고 비극의 도화선이 되는, 그런 부분. 관대들 영상으로 안 남는 거 너무 아쉽네. 강해, 약해, 약한 내가 좋아. 둘 사이에서 오가는 강함과 약함에 대한 이야기들도 마찬가지로. 휴마는 평생을 강하게 살아야만 하도록 강요받은 사람이라서 자신이 바불을 약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에게서 어떤 강한 면을 어떻게든 찾고 그걸 칭찬으로 북돋아주려 했지만 글쎄.. 상이바불 해석으로 생각하면 저 부분도 사실 바불에겐 어떤 강요가 될 수도 있는. 넌 강해 넌 버텨야해 우린 이걸 자랑해야 해. 그래서 바불은 수다라도 떨지 않으면 견딜 수 없게 된 거. 약함이 잘못된 것이 아니고 약함이 약함이 아니다. 


휴마에게 아버지는 동경의 대상이자 삶의 모델이지만 동시에 가장 자신을 억압하고 사랑하는 모든 것을 뺏어가는 대상. 그러나 휴마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미 닮아있고. 휴마는 그가 원하는 진짜 삶이 무엇인지 들여다 본 적도 없었는데 마지막 아리사, 때 처음 자신이 원했던 삶이 무엇일까 한 번 생각해보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더 나이가 든 휴마가 어느 날 새들이 한꺼번에 날아가는 날갯짓 소리에 문득, 칼을 내던지고 정글로 향하는 결말도 꿈꾼다. 그곳에 바불이 있든 없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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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각보다 호여서 김히스는 몹시 당황 중이다. 2. 정민데라 인간적으로 너무 섹시하다. 뮤지컬 섹시한 정민데라의 일생 스핀오프해주세요. 3. 욱진쇼 넘 ㄱㅣ엽구 조타.........😒... 4. 안그래도 동호류랑 욱진쇼 같이 있는 모든 장면에서 쓸 지뢰 밟고 있는데 커튼콜 인사 끝나고 들어가면서 동호 배우 등에 찰싹(?) 붙어서 나가는데 따흐흑... 동호뉴...



5. 이 극을 마츠코 원탑극으로 만든 거라면 굉장히 실패했단 생각이 들었다. 전체적으로 쇼의 성장극이라는 느낌이 강했고 2막은 마츠코보다 류에 더 초점이 맞춰진 느낌. 여튼 최소 마츠코-쇼의 투탑이라고 봐야할만한 극. 이런 감상이 쌓이자 2막은 생각보다 더 별로라고 느껴짐. 



6. 원래 이 극으로 만든 영화를 오래 전부터 참 좋아했고 그랬기 때문에 이 뮤지컬에 대해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그리고 오늘 보면서 느낀 건, 이미 잘 된 어떤 작품을 다른 색으로 표현하는 건 웬만해선 역시 성공하기 힘들다는 점. 심지어 뮤지컬 영화였던 탓에 여기저기서 그런 감성을 관객인 내가 기대하게 되고, 더불어서 작품에서도 그런 색깔을 아주 지워버릴 수는 없는 느낌이었다. 다만 영화보다는 원작을 중심으로 가겠다는 말처럼 이 극은 영화 버전의 컬러풀한 B급 감성과는 조금 궤를 달리 한다. 오히려 담담하게 전체적으로 마츠코의 일생을 풀어내는 느낌. 하지만 너무 담담하다는 것이 오히려 문제. 이 담담함은 마츠코의 목소리가 대부분 직접적으로 전해지기 보다는 타인에 의해 옮겨짐에서 온다. 이 극의 전체를 풀어내는 건 쇼이다. 쇼가 전해 듣는 이야기들, 쇼가 궁금한 이야기들, 쇼가 토해내는 이야기들. 그 속에서 마츠코의 생생한 목소리는 없다. 1막에선 이런 쇼의 역할이 정리된다면 2막에선 류의 이야기가 너무 부각된다. 그리고 나는 그게 제일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츠코라는 인물이 가지는, 이야기를 끌어가는 욕망은 '사랑받고 싶어' 이다. 그것은 자신이 편히 머물고 사랑받을 수 있는 '집'이라는 공간에 대한 욕망으로 직결된다. 그래서 이 이야기들은 대체로 마츠코가 자신의 열망을 이루기 위해 여러 남자들을 만나는 에피소드들로 이루어지고 그 속에서 마츠코가 상처 받고 괴로워하는 이야기들이 주를 이룬다. 그 가운데에서 과연 류가 뭐 그리 특별할까? 무언가 잘못된 그 어느 순간, 의 단초를 제공해줬다는 것 말고는 류라고 해서 마츠코의 일생에서 그녀의 삶에 특별한 무엇인가 되었다곤 말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2막은 오히려 마츠코의 시선보다 류의 시선에서 둘의 사이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하는 느낌이다. 류가 뭐라고. 그도 결국은 마츠코를 행복한 집으로 데려가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해피 웬즈데이가 빠진 게 몹시 아쉬웠다. 마츠코가 가장 그 행복에 가까워졌던 순간을, 그리고 너무 높은 곳에서 또다시 바닥으로 내팽개쳐졌던 그 순간을 너무 짧은 대사 몇 줄로 처리해버려서. 그 부분이 있다면 류가 그렇게까지 부각될 필요도 없었을 텐데. 글쎄, 보는 내내 뮤지컬로 만들면서 여주 원탑이 아니라 그 옆의 남자 롤들에게도 굳이 이만큼의 무게를 줘야 하는 까닭이 있었나, 에 대해 계속 생각했다. 만약 여주 원탑극의 마츠코를 만들고 싶었다면 2막에서 료의 역할을 그렇게까지 부각할 필요가 없었다. 만약 쇼의 성장극까지 섞고 싶었다면 쇼에 대해 조금 더 단서를 줬어야 했다. 그런데 이도 저도 아닌. 



7. 그래도 나는 오늘 욱진쇼가 참 좋았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샌님처럼 아버지의 품에서 자랐을 것 같던 쇼. 영화에서처럼 막 나가는 프리터도 아니었을 것 같은 쇼. 그래서 그런 쇼가 마츠코에 대해 알아가며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알아가는 모습이 차근차근 보이는 게 그래도 이렇게 만들어진 이 극에서는 잘 어울리는 노선이구나 싶었다. I want more이나 거울에서 자신의 진짜 모습을 찾는 순간 너무 순진하게 기뻐하고 즐거워하던 모습이 쇼가 마지막까지 마츠코를 찾아 헤매는 이유가 돼주어서. 중간에 쇼가 잠시 포기하려고 할 때 메구미가 말한다. 인간이 다른 누군가를 완전히 이해할 순 없다고. 맞다. 어떤 인간이 다른 인간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만큼 사랑할 수는 있다, 고 누군가 얘기했고 마지막 즈음에 욱진쇼는 마츠코를 그만큼 사랑하고 있다. 눈물 흘리며 그녀를 스쳐갔던 남자들에 대해 비난하던 욱진쇼와 그런 쇼의 손을 잡아주던 혜나마츠코는... 



8. 마츠코가 내내 끌려다녔던 건 아니다. 분명 마츠코가 했던 선택들이 있었다. 극에서도 그에 대해 완전히 무시한 건 아니었지만 별로 임팩트 있게 다뤄주질 않았다. 마츠코의 목소리가 좀 더 많았더라면 분명 더 와닿는 극이 됐을 거라고 생각했다. 보기 전에는 왜 지금, 마츠코일까? 한국에서? 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그래도 생각보다 그렇게까지 위화감이 들진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녀가 돌아간 집엔 쿠미와 아버지만이 있어서 좋았다. 그녀가 정말로 가고 싶었던 곳, '집'이라는 곳의 원형. 그녀가 아무리 변주했어도 가장 원했던 그 곳.



9. 영화는 129분, 뮤지컬은 인터미션 제외 135분이다(등록 기준). 어쩌다 이렇게 뭐가 잘못된 걸까... 선택과 집중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10. 배우들은 열일했다. 11. 영상은 몹시 1차원적이라고 생각했으나 강가에 있을 때 전체적으로 붉은 조명이 일렁이며 물결치는 것은 좋았다. 12. 마지막 순간에 마츠코는 제 손으로 제 집을 만드려고, 다시 한 번 일어서려고 했다. 그러나 마지막 연출의 엔딩이 너무 전형적인 타다이마-오카에리라 그 나름의 위안은 있지만 아쉽기도 하고. 13. 차라리 영화 버전의 작법을 따랐으면 톡톡 튀는 맛이라도 있었을 텐데 역시 2막이 너무 늘어져😂




* 171207



1. 오늘 다들 목 좋다. 동호류 저번에 봤을 때보다 목상태 훨씬 좋아! 오늘 첫 솔로 부르는데 왜 이리 잘생기고 섹시하고...(생략) 2. 욱쇼 깨알 연기들 다 넘 좋다. 흑흑... 처음 국어 수업할 때 웃으면서 보다가 류 등장하면 굳어지는 얼굴 같은 거. 3. 정민데라...!(유언) 4. 자첫 때보단 2막이 견딜만해졌고 오늘따라 동호류가 넘나 좋은 것이었다. 아이비 마츠코도 좋았고. 인터 때 공원창 들어가본 것은 안비밀...👀



5. 자첫 때 이미 다른 걸 포기했으므로 아예 처음부터 쇼의 감정만 따라가며 보는데 오히려 나는 이편이 훨씬 재밌게 느껴졌다. 물론 내가 욱쇼 악개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나는 이 극이 마츠코에 감정이입을 쉽게 할 수 있는 극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애초에 그렇게 만든 것 같지도 않고. 오히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통해서, 그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그녀를 '이해할 수 있는가?'란 질문을 던지는 극으로 느껴졌다. 물론 그렇다고 쇼의 감정선을 따라가면 공연을 완벽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건 아니다. 모든 인물들을 조명하기엔 극이 부족했고 주된 서술자인 쇼도 마찬가지. 여전히 쇼의 근본된 욕망이나 상처는 오리무중이다. 차라리 영화에서처럼 백수 프리타로 무의미하게 매일을 보내던 쇼가 여자 친구에게까지 버림받은 시점에서 마츠코의 일생을 만나게 된다는, 전사가 한 줄이라도 있었으면 어땠을까 싶고. 뮤지컬의 욱쇼 캐릭터적으로 상상해보면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그저 매일 순종적으로 살아오던 쇼가 순간적인 충동으로 자살을 시도했다 실패하는 순간 아버지에게 전화를 받는다거나, 하는 식의 등장을 상상해봤다. 네모난 박스의 집에 목을 매려던 쇼가 의자를 차고 버둥대다 밧줄이 뚝 끊겨 바닥으로 떨어져 나뒹구는 순간 울리는 전화벨, 그리고 또다시 아무런 의문도 제기하지 않고 아버지의 말에 순종하는 쇼, 그런 스스로가 싫은 쇼. 그런 거. 뻔해도 전사 하나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극 전체의 개연성에 진짜 큰 영향을 주니까. 그이후로 늘 논란이 되는ㅋㅋ 거울 넘버에서 과연 쇼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같은 것도. 욱쇼는 정말 거울 속의 내가 '예뻐'라는 부분이 크게 와닿아서...(배우 본체 영향일까🤔ㅋㅋ) 그런 정체성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긴 한데. 여하간 욱쇼는 이야기를 따라가는 동안 마츠코에 엄청나게 동화된다. 그녀의 일생에 그야말로 흠뻑 빠져들어 엄청 화내고 엄청 울고 아주 잠시지만 같이 행복해하기도 한다. 그래서 메구미가 네 눈이 마츠코를 닮았다는 부분이 몹시 와닿는다. 쇼는 아마 일생껏 저와 같은 사람을 한 사람도 만난 적이 없었을 것이다. 가장 평범하지만 사실 그 작은 동네의 누구와도 비슷하지 않았을 아이. 일탈이라곤 해본 적이 없는 겁이 많고 소심한 아이. 그래서 마츠코의 일생을 따라가는 것은 처음엔 흥미였을지언정 결국은 쇼에게도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욱쇼는 정말 본인 말대로 워낙 조카ㅋㅋ 같다보니까 저 어린애가...! 하는 마음으로 시작하고 지켜보게 되면서 되게 쇼의 성장물 느낌이 강하게 나. 보면서도 쇼가 너무 순수하게 좋아했다 싫어했다 이런 게 얼굴에 고스란히 티가 나서 재밌었다. 해피니스 같은 데에서도 처음 교실 들어와서 학생들 얼굴 쳐다볼 때는 엄청 신기하고 재미있고 장난기까지 있음. 그러다 마츠코가 가까이 오면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는데 그 웃는 얼굴에 동경까지 보여서 정말 쇼가 어린애 같다. 그러나 곧 류가 교실로 들어오면 너무 티가 나게 싫어하는데 님 되게 꺼림칙함!! 이 얼굴에 너무 고스란히 보여서 귀여움. 그리고 고향의 강과 꼭 닮은 아라카와 강을 보며 울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할 때 욱쇼를 보면 욱쇼는 고향의 강을 보며 많이 울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마츠코에게 욱쇼가 동질감을 느끼는 첫 단계구나 싶고. 마츠코가 가족에게 느꼈던 감정들은 완전히 쇼의 그것과 같진 않아도 많이 닮아있다. 아버지에게 사랑을 받지 못했던 마츠코, 마찬가지로 아버지가 늘 무서웠던 쇼. 자신이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던 마츠코, 늘 억압받으며 살아온 쇼. 사랑이라는 게 무엇인지 알지 못했던 두 사람.


이 극에서 또 하나 여전히 아쉬운 것은 엔딩에서 내가 느끼는 것이 무엇인지 확 와닿지 않는다는 것. 물론 나는 줄줄 울고 있긴 하지만👀 마츠코가 모든 것을 털어버리는 것에서 느끼는 해방감인지 그녀의 비극에 대한 가슴 아픔인지 잘 모르겠다. 그것까지도 연출된 의도였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게. 쇼의 입장에서 보면 좀 명확하긴 하다. 마츠코는 그 결말이 어찌되었든 자신을 불태워서 사랑을 했고 사랑을 갈구했다. 그러면서도 본인도 알고 있었다. 사랑에 버림받아 자신을 학대하며 살고 있을지언정 자신을 구원하는 것은 자신 스스로라는 것을. 백야에서처럼 미용사 시절처럼 자신의 손으로 무언가를 쥐고 살아갈 때 가장 주체적이고 행복했다는 것을. 마지막에 마츠코를 껴안고 쇼가 다른 이들에게 원망을 퍼부을 때 마츠코는 자신의 거적데기를 벗고 정말 자신이 그리워한 집으로 비로소 돌아간다. 그 세상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물론 쇼가 여기까지 깨달을지는 모르겠지만 마츠코의 생을 통해서 그가 깨달아가고 있는 과정이다, 라고 생각하며 보게 되는 것이다. 여하간 자첫 때보다는 훨씬 재미있게 봤는데 개인적으로 공연을 볼 때 기준이 되는 건 자첫의 평이라고 생각한다. 자둘부터는 이미 스스로가 합리화하고 기준을 낮춰버리는 경우가 너무 많기 때문에...



6. 욱쇼 초반에 해맑은 표정도 좋고 굿바이에서 눈물 그렁그렁하며 마츠코 보다가 들어가는 아버지(=할아버지) 뒷모습 따라 몸 돌렸다가 다시 정면 향했을 때 눈물 주르륵 흘러있던 것도 너무 좋았고. 공연 전체의 흐름에 맞춰 감정선 올리는 게 보여서 정말 좋았다. 특유의 앙상블들한테 잔망질도 도저히 주먹을 물지 않을 수 없는 들썩임... 몸짓... 흥겨움...(춤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고민되는 그것)도 귀엽고. 쇼라는 역할이 참 잘 어울린다, 는 생각을 많이 했음. 넘버도 음색에 딱붙착붙!



7. 그리고 어제는 동호류가 정말로 좋았음. 일단 저번에 봤을 때보다 목상태가 훨씬 좋았던 것도 있고 동호촤에서도 내가 좋아했던, 그 우월한 피지컬(깍지지만 현실임)에서 너무나 의외로 느껴지는 소년 같은 불안함이 잘 보이더라. 아, 맞다, 쟤 마츠코보다 한참 어린애지, 하는 게 그 흔들리는 표정들에서 보여서 자첫 때보다 훨씬 더 류에 공감...? 이해...? 할 수는 있었다. 



8.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이해'라는 지점에서. 마츠코의 일생 동안 그녀를 이해해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그녀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힘껏 사랑했고 받아들였지만 그녀 역시도 그게 그들을 완벽히 '이해'하고 했던 사랑은 아니었다. 이 극에서 가장 마츠코를 가깝게 '이해'한 사람은 쇼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타인의 시선으로 이해했다기 보다는 이미 마츠코가 자신 안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이해라고 생각한다. 옳고 그르다의 판단이 아니라 마츠코의 생이 이미 자신의 것으로 동일시되었기 때문에 일어나는 이해. 쇼의 그림자. 여기서 자연스럽게 배니싱으로...👀ㅋㅋㅋ




* 171219


1. 정민데라 이정도로 섹시한 건 불법으로 하자... 나라가 허락한 유일한 범.법.행.위...💕


2. 굿바이, 에서 마츠코가 내 손목에 붉은 꽃이 피었다, 하는데 같이 제 소매 살짝 걷어 손목 바라보던 욱진쇼. 오늘따라 욱진쇼는 감정이 마구 격하다기 보다는 좀 더 서글퍼 보였다. 특히 수업을 하는 마츠코가 의자에 앉은 쇼에게 가까이 다가왔을 때 살짝 뻗던 손이. 거의 닿을 것 같던 손이. 욱진쇼는 마츠코와 생각보다 훨씬 많이 닿아있는 것 같다고 늘 느낀다. 비슷한 점이 너무 많은 두 사람이라 마지막에 쇼가 왜 우리는 자신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냐고 울부짖을 때 그런 쇼를 두고 마츠코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는 그 순간 쇼가 무엇을 깨달았단 생각이 드는데 아직 그게 뭔지 모르겠어.




* 171228


1. 주사기 가로로 길게 입에 문 정민데라 너무... 섹ㅅ...(유언)



2. 보면서 생각했음. 연강홀에서 전성우를 네 번째 만났구나. 순호, 릴링, 제이슨, 류. 정말 다 다른 역할인데 그 넷을 다 관통하는 뭔가가 있다고. 여태까지 동호류만 봤던 터라 오늘 늘류 진짜 느낌이 전혀 다르고 그래서 해석도 많이 달라지더라. 열다섯에서 자라지 못한 것 같은, 그런 류. 너무 어린 류라서 동호류 같은 경우엔 루즈에서 마츠코랑 다시 만났을 때, 비 내리는 차에서, '덩치만 컸지 아직 어린애네' 같은 느낌인데 늘류는 '사실 하나도 안 자랐구나' 같은 느낌. 오늘로 자막이었는데 영미메구미, 늘류, 양아카기 세 배우가 다 자첫이었음. 그래서 평소랑 또 느낌이 색달랐다. 마약할 때 특히나... 진짜 몸도 못 가누고 비틀대면서 눈물 콧물 흘려대며 여기저기 부딪히고 널브러지는데 되게 안쓰러워서. 늘류에 혜나마츠코 조합이다보니 마츠코가 저런 류를 보호해줘야 할 것 같단 생각이 들더라고. '도망쳤다'는 말이 정말 잘 어울렸던 류. 늘젯도 도망치고 늘류도 도망치네<< 



3. 오늘 욱진쇼 감정선이 정말 좋아서 사실 화창한 봄날에서 그거 실수였다는데 나는 실수인지도 몰랐다. 심지어 오케가 너무 같이 잘 끊고 같이 잘 들어와줘서 그냥 감정 엄청 올라와서 울컥했구나, 싶었음. 그도 그럴 게 앞에서부터 워낙 많이 울어서. 오늘 욱진쇼 본 중 제일 많이 울고 격했던 날. 중간중간 여러 번 울컥하기도 했고 특히 마지막에... 마츠코 몸으로 덮고 막으며 울부짖는데 정말 가슴 아팠다. 마츠코가 그런 욱진쇼 손 꼭 잡아주고 거적데기 벗어버리며 일어서는데 오늘 혜나마츠코 머리 잔뜩 헝클어져 있는 것까지, 이마 위에 흐트러진 머리칼 한 올까지 슬펐어. 그리고 그런 객석에 등 돌리고 그런 마츠코 보면서... 어깨 바들바들 떨어대며 우는데 욱진쇼 오늘 너무 짠하고 아팠다. 사실 마지막 장에서는 거의 내내 울면서 연기하고 있었어. 대학생들 공원 들어올 때부터 제발 그러지 말란 얼굴로, 자신이 그 시간 바깥에 있다는 것에 너무 괴로워하면서 있어서. 혜츠코도 쇼부터 한 사람씩 둘러보는데 많이 울고 있고 다녀왔습니다, 하는 목소리까지 울먹울먹. 마지막 풍경 울리고 쇼를 향해 양 팔을 쫙 펼쳐 향하는 마츠코는 꼭, 이제 네 인생을 힘껏 살아,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마츠코의 말을 들었다는 듯이 활짝 웃다 암전되면서 고개 숙이고 얼굴 일그러뜨리며 울던 욱진쇼. 커튼콜 때까지 한참 훌쩍. 오늘은 저번처럼 서글픈 어른은 아니었는데 그렇다고 아무것도 모르고 순종적이던 초반의 어린애도 아니고... 뭔가 오늘 욱진쇼는 마츠코가 겪었을 모든 아픔과 괴로움을 이미 그 삶에서 비슷하게 겪어왔던 아이 같았다. 다만 자기 스스로도 그런 슬픔과 괴로움을 제대로 마주했던 적 없는. 그런 아이가 마츠코의 삶을 따라가면서 제 괴로움과도 다시 마주하고 그걸 넘어서가는 과정처럼 보여서, 오늘의 마츠코는 쇼를 서술자로 하는 또다른 한 편의 영화를 본 듯한 느낌이었음. 쇼의 기승전결이 느껴졌달지.



4. 영상 연출들 자체가 취향은 아니지만 그래도 각자가 뜻하는 바는 확실히 있는 것 같기는 하다. 늘류는 영상이 쏘아진 벽을 만지거나 하면서 의미를 더해주기도 했고. 오늘 본 것들은 초반에 류의 심리 같이 파랗고 차가운 영상들 위로 마츠코의 대사가 더해질 때 붉은 레이스가 일렁이던 것. 스트로베리봉봉에서 사랑받고 싶어하는 마츠코의 목소리에 따라 꽃이 피어나던 것. 그러나 끝내 사랑받지 못한 마츠코의 마음 속에서 하나씩 져버리는 꽃.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활짝 피어나 온벽을 채우고 있는 그 꽃들.



5. '당신은 사실 사랑받았다'와 '내가 당신들을 사랑했다'와 '사랑받지 못해도 상관 없었다', 셋 중 어느 쪽이 답일까.



6. 예상보다 마츠코를 많이 보게 되었고, 지금은 마지막에 줄줄 울기까지 하지만... 여전히 나는 내가 자첫한 날의 평이 이 극에 대한 가장 객관적인 평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회전문을 돌 수 있는 극이 좋은 극이라고, 그게 내 취향인 극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생각이 좀 바뀌었다. '회전문을 돌아야만 매력이 있는 극'은 좋은 극이 아니다. 자첫자막을 해도 매력이 있고 좋은 극이 정말 좋은 극이고, 심지어 회전문을 돌면 '더 좋은' 극이어야지 좋은 극이다. 한 번 보는 것만으로는 미완인 극은 절대 좋은 극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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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트아와 비교에서 호불호를 따지자면 나는 트아가 훨씬 좋았다. 왜냐면 트아 배니싱과 초연 배니싱은 전혀 다른 극이기 때문에. 조금 비약해서 이게 연출관의 차이구나, 를 절실히 느낌. 트아가 의신과 케이 둘 관계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초연은 각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됨. 물론 그 안에 셋의 얽힌 관계가 들어있지만 그 시선이 몹시 냉소적이다. 보는 내내 계속 이 셋이 얼마나 이기적인 사람들인가에 대해 생각했다. 인간의 양면성을 뛰어넘어 이기적 존재 그 자체인 인간들을. 모두 자신만을 위한 선택을 한다. 트아에서 케이와 의신이 서로를 위해 한 번씩 목숨을 던진 것과 달리.트아에선 의신과 케이가 서로를 이해하는 어느 지점에 다다랐고 미지 역시 그들을 이해하며 끝이 났는데 초연은 이해를 갈망하지만 결국 타자로서 존재할 수 밖에 없단 결론처럼 보였다. 저 피부를 뚫고 같은 피가 흐르고 같은 상황이 세 번 반복되며 각자 그 상황으로 뛰어들었지만 그들은 마지막까지 각자의 선택을 한 느낌이 강했음. 트아 배니싱은 지금보다 훨씬 어두컴컴하지만 서정적이었는데 초연 배니싱은 뮤 프랑켄에 지킬 세 스푼...! 의신과 케이의 관계가 빅터와 크리쳐로 보이는 건 왤까요... 넘버 구성이나 스토리 흐름도 의신의 감정에 더 많이 맞춰져 있어서 그의 연구가 너무 부각됨. 예를 들어서 트아에선 케이가 의신을 문 다음 의신이 케이를 무시하고 혼란에 빠져 제 연구만 계속할 때 케이가 한쪽에서 우두커니 홀로 앉아 의신을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의신은 날 보지 않는다. 의신은 날 보지 않는다. 그리고 햇빛 속으로 같은 경우도 트아에선 제일 처음 케이가, 극의 중반에선 의신이, 그리고 마지막엔 둘이 함께 결말을 맞이하며 '나의 밤'이 아니라 '우리의 밤'은 끝없이 이어져왔어, 를 부르게 된다. 그게 그 둘의 이해 지점이고 그 긴 시간이 둘을 어떻게 엮어줬는지, 그것이 자의인지 타의인지 구분할 수도 없는 시점까지 온 것을 이해하게 해주었는데... 지금은 성연출이 반복된 장면들에서 말하고파고 했다는, 300년 된 뱀파이어와 3년 된 뱀파이어와 갓 뱀파이어가 된 세 각자의 '존재' 이야기가 된 느낌. 이번 시즌의 그들은 서로 각자 너무 외롭다. 아주 잠시 같이 걸었을지언정 영원히 그들은 각자 피부 너머로만 서로를 느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사실 보는 내내 트아가 많이 그리웠다. 트아라고 완벽한 극은 아니었고 그당시에도 구멍 숭숭이라 욕 많이 먹었는데 내가 좋아했던 분위기와 내가 좋아했던 관계는 지금의 배니싱에는 없더라고. 순정만화에서 소년만화로 바뀐 기분. 그래도 그나마 관대 덕분에 납득간 부분들은 있지만...



2. 명렬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방법은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 받는 것. 의신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방법은 무엇인가를 성취하는 것. 케이는 자신의 정체성을 잃은 채 너무 오래 살아왔고 그러다 그가 의신을 만남으로써 자신의 자아를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케이에겐 의신이 가장 중요하다. 관대에서 민진케이의 저 답변들이 그래서 좋았다. 케이에게 의신이 가장 중요한 까닭. 만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었고 비로소 다시 삶이라는 것이, 시간이라는 것이 흘러가기 시작했는데 마지막에 의신을 통해 자신의 삶을 죽음으로 완성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각자의 욕망이 다르기 때문에 그들은 모두 이기적으로 움직인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명렬은 의신을 고발하고 의신은 케이를 버려둔 채 제 연구에 몰두하고 케이는 의신을 물고 또 의신을 두고 죽겠다고 한다. 혼자 영원히 사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면서도. 그게 이 극의 모든 갈등의 원인이 된다. 정말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아무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끝까지 각자의 입장에 서있다. 피부 아래 같은 피가 흘러도 각자의 외로움은 오로지 각자의 몫이다. 케이, 의신, 명렬 세 개의 외로움. 어떻게 보면 각자의 캐릭터성은 확실히 초연이 더 강하긴 하다. 



3. 트아는 케이의 사건이고 초연은 의신의 사건이다. 트아에선 미지가 등장하고 미지가 관조적으로 그들을 바라보는데 미지는 케이에게 이야기를 듣고 있는 입장이니 몹시 당연하게도 케이의 입장에서 서술되는 극이 됐다. 반면 초연은 의신이 연구를 하는 과정들에 케이가 얽혀든다. 그래서 의신의 시간에 따라 사건이 서술된다. 그래서 트아에선 케이의 감정이, 초연에선 의신의 감정이 더 잘 드러나는데 케이가 원하는 건 의신과 함께 있는 시간들이었고 그래서 극 전체가 더 서정적이었다. 반면 초연에선 의신이 연구에 성공하기 위해 고뇌하는 시간과 사건들, 명렬과의 부딪힘이 더 드러났고 그덕분에 지킬과 뮤 프랑켄을 소환하게 된다. 긴 시간의 흐름도 없었기 때문에 의신에게선 외로움도 사실 크게 도드라지지 않는다. 얘도 어린 시절 부모님을 잃고 학교에서도 괴짜로 소문나 친구도 명렬이 밖에 없는, 아마 분명 외로움이 있는 아이였을 텐데 그런 감정이나 트라우마는 서정적인 시선이 아니라 연구에 미친, 괴짜 과학자의 원동력으로만 작동한다. 트아에서 의신도 부모님을 잃고 할머님 손에 자란 아이였고 몹시 효자였으며 학교에선 수석, 병원장 딸과 약혼, 심지어 미국으로 국비 유학까지 가게 될 완벽한 인물이라 명렬이 '의신이 형 부럽다'를 노래했었는데 반면 그에겐 서정이 주어졌다. 명렬이 틀어박힌 의신을 찾아와 전해주는 말들. 할머님이 돌아가겼다거나 그의 개인사가 하나씩 무너져가는 이야기들. 이런 게 트아와 초연을 비교해보면 엄청나게 명확하게 드러나서 와, 이게 연출관인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들더라. 인물이 부각되는 지점들이 너무나 다른 것.


 그래서 여전히 너무나 아쉬운 건 트아에서 제일 좋았던, 점층적으로 둘의 감정이 쌓이는 과정들이 초연에선 너무 뭉텅이로 잘려나갔다는 것. 글쎼, 나는 만약 재연이 온다면 다만 몇 년의 시간이라도 흐르는 장면들을 더 보여줬으면 좋겠다. 트아에선 오히려 그 시간들이 굉장히 고요해서 지루하단 평이 많았는데 초연에 오니 지킬 같은 넘버들이 막 쏟아지고 의신이가 세미 컨프롱을 하고... 사람이 죽고(살인 살인 한밤중에 살인 살인!!) 의심하고 의심받고 사건들이 되려 와르르 몰아쳐서 감정선이 드러날 시간은 없음. 그걸 배우들이 채우곤 있는데 그렇다고 부족한 텍스트가 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트아의 점층적인 감정선(제일 처음 자살을 시도하는 케이와 만나는 의신, 자신을 두고 떠날 것 같은 의신 때문에(의신은 같이 가자고 했으나 그럴 수 없으니) 너에게 연구할 시간을 더 주겠다며 그를 물어버린 케이, 케이에게 화가 나서 그를 쳐다보지 않는 의신, 본능을 못이겨 피를 탐한 후 정말 인간의 삶을 살 수 없다고 생각하고 케이에게 돌아간 의신, 의신과 케이의 행복한 한 때, 긴 시간, 명렬과의 대립, 백신을 버리고 의신과의 죽음을 택하는 케이)에서 그 그루터기, 여름 밤, 그 분위기... 를 사건들 사이에 적당히 섞어서 다시 볼 순 없을까...? 트아에도 끝나고 남은 건 케이와 의신이라는 캐릭터 뿐이었는데 초연도 비슷하게 되려나 싶기도 하고. 여하간 이 케이랑 의신이랑 캐릭터의 케미과 관계성은 두고두고 팔릴 만하니 부디 더 좋은 방향으로 각색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솔직히 보면서 내가 막공주에 봐서 다행이라 생각했음. 공연 오픈하고 나서 얼마나 난리였는지 기억하고 있기에. 공연을 마지막까지 만들어간다는 건 결코 좋은 의미는 아니니까. 내가 성연출 취향=내 취향이라고 외쳐오긴 했지만 그 취향을 잘 표현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니까. 파수꾼, 이라는 말을 했을 때 아! 하고 어떤 방향을 원했는지 납득은 했는데 파수꾼이 명작으로 뽑히는 건 그들의 감정선을 몹시 예민하고 섬세하게 다뤄냈기 때문이다. 그런 섬세함이 부디 배우들의 연기가 아닌 텍스트와 연출로도 다뤄지는 다음 시즌이 되길 기대한다. 여하간에 나는 케이와 의신이 캐릭터는 이미 트아부터 너무 사랑했으므로... 하지만 여름밤 돌려조라... 나의 밤은 끝없이 이어져왔어, 그루터기에 앉아 노래하던 케이로 시작된 둘의 만남이 같이 그루터기 앉아 우리의 밤은 끝없이 이어져왔어, 라고 노래하며 둘이 함께라는 것에 더 방점을 찍어줬던 트아 버전의 감정선이 다시 꼭 보고 싶다. 여름 밤은 참 짧기도 하지, 의신이 던지는 이 말이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에서 얼마나 다른 느낌으로 와닿는지도. 그루터기라는 것도 사실 단순히 인간의 것들과 섞인 자연의 존재, 뿐만이 아니라 그 오랜 세월을 버티고 있는, 이미 줄기는 잘려나갔지만 그 자리에 버티고 있는 케이와 의신이 같기도 해서 더 좋았었는데. 따흐흑... 나 트아 배니싱 사랑하냐...?









* 박영수 백작























* 정욱진 프로페서 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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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_김종구, 문태유














벡비_정민, 양승리












앨리_정연, 조지승











식보이_홍승안, 김바다













토미_고상호, 손유동













스퍼드_송유택, 신주협












18'트레인스포팅

"나는 선택하지 않기를 선택했다, 씨발!"















"이것은 헤로인에 관한 이야기이다. 혹은, 이것은 선택에 관한 이야기이다."









* 마크_김종구, 문태유 / 토미_고상호, 손유동 / 스퍼드_송유택, 신주협 / 벡비_정민, 양승리 / 식보이_김바다, 홍승안 / 앨리_정연, 조지승




1. 「키에르케고르의 사고에 있어서 이것도 저것도 모두 주워 담는 것이 아니라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선택이 그에게는 중요하다. '전체 아니면 전무’라는 그의 변증법은 양자택일의 결단의 논리로서 '질적 변증법'이라 할 수 있다. (후략)」「키에르케고르의 실존이란 자유로운 개인에 관한 범주였다. 그에 따르면 실존한다는 것은 이것이냐-저것이냐의 자유로운 선택, 곧 자기 기투를 통해 자기 자신을 실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실존한다는 것은 점점 더 많은 개인이 된다는 것, 그리고 점점 더 덜 집단의 구성원이 된다는 의미다.…실존하는 개인인 인간에게 참으로 중요한 문제는…실존의 단계에서의 행위의 선택에 의해 해결되는 것이다. 키에르케고르가 제기한 문제는 근본적인 자기 기투를 포함한 그 자신의 개인적 선택에 대해 제시된, 이것이냐-저것이냐의 형식으로 자기 안에서 생겼다는 의미에서 그 자신의 삶에서 생겼다.」(인용)



2. 트레인스포팅은 결국 어떤 방식으로 '존재'할 것인지 '선택'하는 것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 그들의 선택이(특히나 약을 하고 안하고와 관련된) 그들을 어떤식으로 실존케 하느냐. 마지막 마크의 선택은 그가 또다른 방식으로 존재하겠다, 는 선택이다. 단순히 살아있다고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트스는 흔히 약쟁이는 나쁜 놈, 약을 안 하는 놈은 착한 놈이라는 공식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 특히 토미가 처음으로 약을 하는 장면에서 앨리와 벡비의 대비를 통해 그 메세지를 선명히 드러낸다. '영국 놈들'에게 희롱을 당하고, 그 누구도 나를 보호해줄 사람도 없고 심지어 이것을 털어놓을 친구 하나 없는 앨리가 이 외로운 행성에서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 약자로서의 앨리를 드러내며 약을 하는 순간. 그리고 약은 하지 않았지만 술에 취해 날뛰며 (아마도)아무 죄 없을 사람을 무자비로 폭행하며 강자로서 으르렁대는 벡비의 모습.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처음으로 약을 '선택'하는 토미. 토미의 개인 서사 속에서, 이 큰 틀 속에서, 그래서 토미는 나쁜가? 그의 선택이 최악이었다는 것은 결과론적으로 더 말할 것이 없겠지만... 그 순간의 토미에게 그보다 더 나은 선택은 과연 있었을까? 잘생기고 싸움도 잘하고 친구들에게 인기도 많은 토미였지만 결국 그는 약을 하지 않았을 때에도, 그 에든버러에서 애들과 헌금함이나 털며 살아왔었다. 사랑하는 여자에게 맞아가면서. 그 상황에서, 그 사회에서 더 나은 선택은 있었을까? '내가 알아서 조절할게'. '나는 그럴 수 있을 줄 알았어.' ...'어떤 멍청이들은 더 쉽게 약에 빠져든다.' 그걸 예상치 못한 게 토미의 잘못은 아니잖아. (전지적토미맘😂)


이 극 속의 캐릭터들은 서로가 서로와 꽤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 같지만 결국 '약쟁이들은 친구가 없다'라고 스스로들 생각하고 있기에 허망하다. 소위 말하는 건강한 관계가 없달까. 벡비의 '넌 절대 쓰러지지 않아'라는 말 조차도 마크에게는 '혼자 일어나고 혼자 쓰러질 것이다'고 말하며 도망치고 싶은, 관계의 일종일 뿐이니까. 하지만 그런 관계들이 모두 잘못되었는가? 라고 말한다면... 그건 아니지. 금단 증상으로 찾아온 추위에 떠는 토미에게 제 옷을 걸쳐주는 마크나 그런 마크에게 도로 옷을 돌려주는 토미나, 아무리 미안함과 죄책감으로 뒤엉켜 있대도 그저 그것 뿐만인 '빚'을 진 관계들은 아니잖아. 그래서 보고 있으면 가슴이 아픈 거다. 잘못 맞춰진 레고 조각들 같아서. 반드시 무너질. 다시 모두 해체하고 조립할 수 없는, 그런 블록들. 그래서 마크는 제 조각을 다른 판에 끼우기 위해 마지막을 선택한 것이다. 그래서, 그가 개새끼인가? 그래서 스퍼드는 이 극에서 가장 직선적인 캐릭터이다. 환각 속에서 그가 다람쥐에 대해서 그리고 자신들 스스로에 대해서 얘기하듯이, 그리고 앨리의 곁에 있어주자고 얘기하듯이, 그는 그런 관계들 속에서 꽤 담백하게 스스로를 다 털어놓는다. 그래서 난 마크가 마지막까지 챙겨줬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나는 이 극에서 관계는 마크들에 따라, 서사는 토미들에 따라 달라진단 생각이 많이 들었다. (내가 배우 본체들에 가지고 있는 이미지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단순히 말해 종구마크는 조금 더 인싸, 태유마크는 조금 더 아싸 같은 느낌이었음. 그 무리들 가운데에서도. 둘 디테일이 많이 다른데 특히나 토미 첫 경험👀 장면에서. 종구마크는 이 장면에서 훨씬 약에 취해 늘어져있고 나른하게 토미를 맞는다. 태유마크는 반면 초반은 아예 다른 세상에 가있다가 토미와 얘기를 할 때는 더 시니컬하다. 종구마크는 더 관계적이고 태유마크는 스스로에게 더 침잠해있는 마크란 생각이 들었다. 종구마크가(내가 '마담 같다'고 표현한) 약간은 형처럼 토미에게 말하는 것과 달리 태유마크는 더 냉소적으로, 객관적인 척하며 말해. 토미들은 그 장면에서 마치 수학여행 가서 몰래 가져온 술 마시는 느낌으로,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하는 듯 약에 달려드는데(그 이면의 감정은 제쳐두고) 사실 나는 거기서 토미에겐 일종의, 그때까지 이 약쟁이들을 보며 쌓아온 우월감도 있었을 거란 생각을 해서. 너네랑 나는 달라, 나는 그래도 약은 안 해, 나는 그래도 이깟 약 한 번으로 끝낼 수 있어, 같은. 그리고 종구마크는 그걸 '알았을' 것 같고 태유마크는 '딱히 관심 없었을' 것 같은 마크다. 물론 종구마크가 인싸라 얘들과 다 죽고 못사는 관계라는 뜻은 아니고 태유마크가 아싸라서 얘들과 다 유리되어 있단 의미는 아님. 그러나 기본적인 자세가 다르단 느낌이라 마지막 장면에서 다가오는 느낌이 많이 달라지더라. 종구마크는 쟤가 '그런 선택'까지 했단 점이 더 크게 들어오고 태유마크는 전체적으로 아주 매끄러운 서사처럼 느껴지게 되고. 다만 더 재밌는 것은 두 마크가 이렇게 다른데 아주 기본적인 베이스는 비슷하게 느껴진다는 것. 아주 단단한, 쟤들 잘못 건드리면 ㅈ될 것 같은, 부분이 있는 마크들. 처음 영화의 감상에 더 가까이 있었을 때에는 그래서 이 마크들이 극과는 좀 겉돌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막판까지 오고 나니까... 오히려 저런 마크들이라 이런 극의 의도가 더 잘 드러났단 생각도 든다. 영화보다 벡비의 폭력성은 감추고 오히려 그의 인간적인 부분을 드러내며 마지막 마크의 선택에 우리가 온전히, 찝찝한 마음 없이 몰입하진 못하게 만든 연출에서는 마크들이 단순히 다 무너질 것처럼 흔들대는 캐릭터로, 단순히 벡비의 폭력성을 견디다 못해, 어떤 충분한, 공감할만한 이유를 가지고 에든버러를 떠나선 안되는 게 맞는 느낌이라. 애초에 저런 깡다구가 있는 애들이니 저런 선택도 하는구나, 이제는 오히려 그런 생각으로 극에 몰입하게 되더라.


마크들이 이렇게 '관계'를 드러내며 마지막 선택에 관한 이야기를 해준다면 토미들은 제일 공감할 수 있는 서사를 드러낸다. 그런데 고토미는 훨씬 활동적이고 폭발하는 에너지라면 유동토미는 훨씬 가라앉고 자신 안에 있는 에너지라서 풀어내고 다가오는 느낌이 많이 다른 것도 재미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초연 트스는 텅 빈 공간들을 배우들의 에너지로 죄다 채우면서 폭발시키는 게 취향이었고 고토미가 그런 에너지들을 있는 힘껏 뿜어내다가 막판에 그 에너지가 죄다 사라졌을 때, 그 대비가 좋아서 더 취향이긴 했지만 트스는 전체적으로 캐릭터들을 다양한 변주로 볼 수 있어 좋았다. 에너지 얘기가 나와서, 나는 결과적으로는 트스 무대에 별 거 없는 게 정말 좋았다. 원래 태초부터 취향이 공사장인 까닭도 있지만(ex.풍 초연) 그 모든 공간을 배우들이 에너지로 채워내는 것도, 아, 이래서 무대 예술이고 현장의 맛이고 배우의 힘이구나 싶어서. 영화 트레인스포팅이 이미 우리에게 너무 잘 알려져있고(매니악한 영화기는 하지만 되려 그 매니악함으로 유명하니), 그 영화가 감각적인 영상 연출과 음악으로 큰 사랑을 받았는데 그걸 오롯이 무대로 옮긴다는 것은 이미 견줄 대상이 아니었던 것. 차라리 한국 프로덕션 트스만의 영상과 음악이 배우들을 도와줬던 게 좋았다. 영상과 음악이 주가 되는 게 아니라 배우들이 쏟아내고 채워내는 에너지가 주가 되고 그 위에 영상과 음악이 있는 느낌이라서 좋았다. 영상에 압도당해라! 로 쏘아대는 극이 아니라서. 배우들은 힘들었겠지만 그들이 뛰어다니는 덕분에 이게 무대지, 싶어서 몹시 그 점이 취향이었음. 더불어서 모든 배우가 그 에너지를 다 거들어야만 한다는 것도 좋았다. 그래서 혼파망 다람쥐씬이 좋았음. 모든 배우가 무엇인가를, 미친듯이 몸을 굴려가며 하고 있다는 게. 포커스는 마크와 스퍼드에게 가있지만 무대 위의 배우들이 다 계속 뭘 만들어가는 장면이라 좋았음. 그런 의미로 제일 처음 들어오는 장면도. 뛰어다니는 장면도 좋지만 난 경찰차 지나가고 몸을 숨기는 순간이 그 시퀀스 중에 제일 좋아하는 부분이었다. 경광등이 온벽을 시뻘겋게 뒤덮고 울려댈 때, 각자 몸을 숨기며 잔뜩 긴장한 채로 경계하는 순간. 벡비는 욕을 하고 토미는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들고. 대사 한 줄 없지만 그 순간, 모든 배우들이 다 집중해서 실제 무대 위에 없는 무엇인가를 잔뜩 경계하며 연기하고 있다는 게 볼 때마다 짜릿했었다. 가끔 너무 혼파망인 장면들이라 누구 하나가 뭘 덜해도 티가 날까 싶지만 반드시 모두가 다같이 하고 있어서 트레인스포팅의 매력이다, 싶었던 에너지들.


그리고 그렇게 모두 무언가를, 열심히 하면서도 다르다는 게.


택퍼드는 정말 똘망똘망한 다람쥐라 벡비가 쟤는 '잘 해낼 거'라는 믿음이 있어 보였고(재판정에서도 스피드를 아주 조금은... 했어야 했는데!) 주협퍼드는 벡비는 나를 '배신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어 보여서 좋았다. 주협퍼드가 택퍼드보다 덩치는 훨씬 큰데도 안짱다리로 우물쭈물하며 망설이는 모습이 있어서 벡비나 다른 애들에게 기죽어있는 모습이 더 보이면서도 되려 다람쥐씬에선 더 극적이라 좋았음. 택퍼드는... 네오극 윱정택고 말해 뭐해?! 말.모.말.모!! 이런 느낌🐿️ 상황들을 쫄깃하게 만드는 재능은 천부적이지.


정연앨리는 이 '엿 같은' 행성에 화를 내는 느낌이 더 강하고 지승앨리는 '온 몸이 차갑다'에 더 가까운 느낌. 정연앨리는 사회에 대한 화를 더 크게 느낄 수 있고 지승앨리는 그의 외로움과 괴로움을 더 크게 느끼게 해줬음. 정연앨리가 터뜨린다면 지승앨리는 안으로도 많이 곪았겠구나, 싶은.


식보이들은... 내 기준 식보이 킬링포인트 첫 번째는 아기를 안고 울고 있을 때, 두 번째는 마크를 찾아왔을 때. 아기를 안고 발을 동동 구르며, 약을 끊겠다 울부짖으면서도 약을 다시 하러 올라가는 앨리를 바라볼 때의 식보이들. 죽어 차갑게 식은, 아마 모습까지 변했을 아이의 이마에 입맞추는. 그리고 마크에게 찾아와 재수없게 굴면 굴수록 그 이후의 식보이의 모습들이 더 극을 설득력 있게 만들어서 좋다. 한 탕 할 큰 일들을 찾아다니면서도 결국은 약을 끊지 못한, '스퍼드 같은 애'들과 아직도 어울리고 있는 식보이는 내가 이 생활을 끝낼 것을 선택하려는 마크의 결심을 굳히는 데에 몹시 중요한 역할을 하니까. 마크 어머니 앞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는 똑똑한 애도 이 에든버러에선 바뀌지 않는다. 에든버러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올라타지도 못할 기차를 바라보며 의미없이 다른 사람이 잡아채 달려나가는 기회를 멀리서 외치는 것 뿐이었으니까. 그래서 토미가... 제일 첫 장면의 트레인스포팅에서 돈을 따가는 게 굉장히... 묘하다. 그리고 마지막 달려가는 기차에 올라타려는, 기차 앞의 마크를 유일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도 토미라는 것 역시. 토미를 중심으로 두고 이 극을 보면 내가 금단 증상에라도 시달리는 듯 온몸이 안절부절이다.


벡비들은 의외로 토미 첫 경험👀 장면에서 뒤에 술 취해서 행인한테 폭력 휘두르는 장면이 꽤 크게 차이가 나서 놀랐음. 그리고 의외로 정민벡비가 난 더 무서웠다. 사실 비행기 태워주거나 이런 저런 장난도 많이 거는데 그게 피지컬적으로 누르는 느낌이라 되려 더 위압적임. 그리고 조니는 승리조니가 더 여리다고 해야 할까, 섬세하다고 해야 할까, 그런 느낌이 강했음. 아무래도 정민조니는 요가를 하는 사람이라 스스로를 잘 다스리나봐...(아무말) 여담이지만 정민벡비 제일 감탄하는 포인트는 봉 타고 내려올 때! 진짜 트렌치 예쁘게 날리면서 내려와서 눈을 뗄 수 없다. 



3. 트스를 처음 봤던 날부터 곱씹어보는 오늘까지, 사실 나는 트스와 나쁜 자석을 비슷한 선상에 두고 생각하고 있다. 캐릭터들 사이의 유사성이라기 보다는 어떤 친구들 간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 스코틀랜드 이야기라는 점, 그 시대 특유의 분위기가 있달까. 상황과 의미는 다르지만, 앨런의 '친구는 선택할 수 있지만 가족은 선택할 수 없다잖아'라는 말과 프레이저의 '난 친구도 선택해본 적 없는데?' 하는 대사도 간혹 트스를 볼 때 떠올랐었고. 추연출의 스코틀랜드 2부작쯤 될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무엇보다도 다른 이유로 친구들을 떠나는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들, 이니까. 



4.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호인 작품이었고 텍스트에 읽을 거리도 많아 재미있게 즐겼지만 역시... 아쉬운 부분들도 여전히 많이 남아있긴 하다. 내 컨디션을 탄 건지 배우들 간에 미묘하게 마가 뜬 회차였는지 간혹 못 견디게 졸리고 지루했던 날도 있었고 연극이니 텍스트가 잘 보이긴 했지만 역시 뮤지컬이면 어땠을까 싶기도 했었고. 저만큼 뛰고 구른 다음에 노래까지 하라고 했으면 배우들 파업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해내지 않았을까?(남일) 락뮤지컬로 인생을 선택하라! 를 떼창하는 걸 상상해보면 엄청 신날 것 같은데!!(남일222)



5. 여하간 객석은 냉정하니까.



6. 더 떠들 것이 있을까? 있으면 덧붙일테고 일단은 마무리. 이것은 선택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것은 인생 속에서 우리의 선택이 어떻게 바뀌어가는 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것은 마크가 변해가고 탈피하며 탈출하는 선택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것은 선택으로 굴러떨어진 누군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초반부 관객들의 평이 그랬다. 그냥 약쟁이들이 약하다가 끊겠다고 지랄하다가 다시 또 약을 하다가 갑자기 친구들 배신하고 도망치는 얘기라고. 틀린 말이 하나도 없다. 그러나 그것이 그들의 삶이고 선택이며, 우리는 그들의 삶과 선택을 보며 우리 인생의 선택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들보다 우리가 낫다는 우월감이나 승리감을 가지기 위해서는 아니다. 불행 포르노를 보는 것마냥 그들을 동정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들이 선택하기 위해 치뤄야 했던 고통들과 그 대가들과 그 속에서 일어나는 (보편성과 공감성을 떠난) 성장을 보며 내 삶의 선택들에 대해 돌아보기 위해서이다. 내게 트레인스포팅은 그런 극으로 기억될 것 같다.



7. 기차 번호가 365라는 거, 꼭 365일 같단 생각을 했다.



8. 선택이라는 말을 자꾸 하다보니 왠지 파우스트 생각도 나고. 유혹과 선택. 헤로인과 사과. 사과, 미드나잇, 백합. 아무말 대장정.



9. 자고 일어나니 어메이징 그레이스가 자꾸 귀에 들려서. 어메이징 그레이스에서 뒤에 배우들의 모습을 그래픽으로 사용한 영상이 정말 좋았다. 주사기에서 몸으로, 약이 도는 모습을 영상으로 나타내고 마크의 움직임이 영상과 같이 움직일 때의 그 느낌. 그 부분 영상이 트유에서 제일 첫 장면, 시계 앞에서 율본하 움직이는 영상이랑 비슷한데 역할이나 느낌도 그와 비슷해서. 그리고 그렇게 약으로 흥건했던 마크의 영상이 나중에 시트 위로 쏘아질 때. 그걸 거기에 두고 탈피하는 마크의 모습까지. 이어지는 영상의 사용이 극의 흐름이 되어 좋았다.













* 180131 네버더시너 / 이형훈 네이슨, 정욱진 로엡, 윤상화 대로우, 이현철 크로우, 기자 外 윤성원, 이상경, 현석준




1. 생각보다는 호였고 좀 지루한 부분이 분명 있었지만 어떤 면의 재미를 느껴야 할지 알겠더라.



2. 쓰릴미로 따지면 오히려 네이슨에게 리차드가 더 많이 의존하는 게 확실히 보임. 초인론 때문에 무너지는 게 네이슨이고. 두 극 사이의 캐릭터 해석이 묘하게 반대라 일단 그 재미가 있었음.



3. 내가 이형훈 배우 연기를 보며 실망한 적이 한 번이라도 있던가? 이번에도 역시 형훈 레오폴드 너무 좋았고 연기 천재 소리 나옴.



4. 사실 이 극을 보면서 레오폴드와 로엡은 소품으로만 사용되는 게 맞지 않을까 했다. 자세한 감상평은 오늘 밤새도록. 이하 네버 더 시너 스포일러 쏟아집니다.



5. 욱진로엡은 그야말로 허세 가득한 애새끼. 세상 모든 것이 다 자기 발 아래에 있다고 생각하고 그 모든 것을 제가 조종할 수 있다고 믿는 아이. 그리고 자신이 레오폴드를 몹시 의존하고 있고, 그가 없으면 안된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쓸의 리차드와는 전혀 다름. 우리는 영원히 함께할 거라고 확신하고 우리, 라는 것을 누구보다 강조하며 중요하게 여기고, 우리가 떨어지는 것을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그들이 우리를 찢어놓을까 걱정하는 쪽이 로엡이다. 너와 다른 교도소를 가는 것보다 같이 교수대에 매달리고 싶어하는 쪽이, 이 극에서는 로엡이다. 이 극에서 로엡은 딱히 제가 레오 보다 뛰어나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저 각자 잘하는 영역이 다름을 인정하고 그와 완벽히 결속되기를 바라는 느낌. 그래서 오히려 네이슨 같은 느낌이 많이 들었다. 여자와 함께 있을 때도 당연히 레오를 택하는, 그리고 레오가 훨씬 로엡을 잘 다뤄. 형훈 레오폴드는 정말 이성 그 자체. 물론 로엡을 너무나 사랑하고 숭배하지만 오히려 로엡보다 훨씬 현실을 잘 파악하고 감정보다 이성을 앞세울 줄도 알아. 로엡을 정말 잘 다룸. 그리고 네버 더 시너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 쓰릴미의 '네가 날 취하게 만들어놓고 어떻게 날 꼬셨는지'를 알 수 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대로우와 초인론을 가지고 논박할 떄. 자신의 심장 소리를 들어보라는 대로우에게 자신의 이상이 완전히 무너져내린 레오가 그야말로 너덜너덜해져 늘 차분하던 그가 헝클어진 채 서있고, 그리고 그걸 당황한 눈으로 보고 있던 로엡. 왕과 노예, 언제든지 끊고 달아날 수 있는 황금줄에 묶인 노예는 마치 왕에게 종속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노예가 없다면 왕은 존재할 수가 없다. 항상 왕을 승리로 이끌었던 노예가 없다면, 더이상 왕으로서 군림할 수 없다. 그걸 로엡도 레오도 너무 잘 알고 있는 그런 관계. 형훈 레오폴드가 늘 그렇게 차갑고 단정하고 이성적이다가 (물론 로엡을 향한 감정을 드러낼 때 빼고) 마지막 최후 변론에서 그 창백하고 파리하게 앉은 상태 그대로 눈물을 주르륵 흘리는데... 글쎄, 그게 어떤 의미인지 매번 찾으려 노력한다면 아마 회전을 돌게 되겠지. 그게 레오 역시 어린 아이라 죽음이 두려워져서인지 자신의 모든 이상이 박살나서인지. 형훈 레오는 정말 좋아서 네이슨으로도 보고 싶어짐. 네버 더 시너의 레오폴드는 우리가 생각하는 쓰릴미의 '나'의 캐릭터와는 중심점이 전혀 다른데 그걸 진짜 잘 만들어서 좋았다.



6. 그리고 욱진로엡 얼굴 대유잼(본인 말대로). 어두운 금발에 몸에 잘 맞는 격자무늬 수트, 내 자리에서 옆얼굴선이 딱 떨어지게 보이는데, 와... 진짜 되게 그 옆 프로필이 너무 고전 미남인 것. 얼굴뼈가 참 잘생겼어! 그런 와중에 엄청난 애새끼미를 뽐내고. 사실 아쉬운 부분들도 꽤 있었다. 중간에 너무 흘려버리는 딕션이라거나 대사 시작할 때 주로 쓰던 약간, 너무 연극적인 발성, 과한 웃음톤. 그래도 대유잼< 



7. 극은... 사실 나는 좀 애매하다고 생각했다. 이 극이 과연 쓰릴미와 얼마나 다르게 우리에게 다가올 것인가? 이미 너무 많은 소극장 관객들이 쓰릴미를 알고 있는 시점에서, 어떤 의미로 우리에게 다른 메세지를 줄 것인가. 나는 그래서 이 극이 좀 더 '법정 싸움'에 가까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글쎄, 그렇다기엔 로엡과 레오폴드의 이야기를 너무 많이 보여주더라. 변호사와 검사의 역할 또한 너무 단순해. 그나마 대로우의 경우엔 로엡과 레오를 건드리기라도 하지, 검사 역할은 너무 무게추가 가볍다. 이 극이 '정의란 무엇인가?'를 묻고 싶었다면 로엡과 레오의 이야기는 훨씬 덜어냈어야지. 쓰릴미로 치면 어프레이드나 라이플 같은, 로엡과 레오의 감정선을 잔뜩 드러내놓고서 우리에게 그 이야기를 묻는다면... 너무 대등하지 않단 느낌. 그래서 마구 불꽃 튀는 법정 장면은 기대하지 말 것. 그리고 오늘 낮에 이영학 사건 사형 판결 기사를 보고 갔더니 자꾸 그런 생각들이 들어서. 변호사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똑같은 광기에 빠져야 하냐고, 이성의 시대, 미래로 나아가지 않을 거냐고, 맹목적으로 그들을 매달라는 사람들의 함성에 강요받아야 하냐고, 저 둘을 사형에서 구해내고자 외치는데 나의 감성은 늘 그런 사건 들에서 사형을 외쳐왔기에. 그런데 눈앞의 극은 너무나 로엡과 레오의 말랑한 감정들을 많이 드러낸다. 물론 좀 더 잔인하게 사건을 부각시키기는 한다. 살인을 실행하는 장면도 더 직접적으로 보여주기도 하고 둘이 초반에 죄책감 하나 느끼지 않고 법정에서 낄낄대는 장면들도 보여준다. 하지만 극의 클라이맥스인 최종변론에서 중간에 둘이 교수형을 두려워하며 아이를 죽이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를 생각하며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여주는 건 너무 한 쪽으로 추를 올려놓는 방향 아닐까 싶어서. 얘들은 저렇게 '만들어진 것이다'를 주장하는 대로우와 그렇다면 희생자가 흘린 피의 대가는 저 뻔뻔한 새끼들을 용서해주는 것으로 대신할 수 있는가 나는 자꾸 묻게 되더라. 그런데 이 물음조차도 완벽하게 연출적이나 텍스트적으로 의도된 건 아니라서... 이 극이 주는 메세지를 도통 모르겠다. 또한 대사들의 호흡이 무척 길다. (그래서 오늘 현철 검사님 너무 저시기도 했고) 그런데 그게 한 번에 귀에 다 들어오는 호흡이 아니라서 지루해지더라. 그 부분 대사들을 다 줄였으면... 싶은데 그럼 그냥 로엡이랑 레오폴드에 관한, 사실을 풀어낸 극밖에 안될 것 같아서. 솔직히 연출적으로 이건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더 어떻게 나아지거나 조이기도 힘들 것 같음. 뭔가 너무 균형이 안 맞아. 



8. 극의 전체적인 흐름은 이미 쓸덕들이 이미 너나우리모두 잘 알고 있는 흐름과 거의 흡사함. 나는 재판 이야기들 사이에 로엡과 레오의 이야기가 끼어있겠구나, 했는데 분명 그런 스타일로 진행이 됐는데... 어느 순간 로엡과 레오의 이야기가 훨씬 더 많단 생각이 들고 그게 더 주가 되는 느낌. 대신 쓸과 다른 점들은 촤와 넷의 관계와는 달리 로엡과 레오는 정말 동등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음. 그래서 둘이 누가 누구를 조종했는가, 이런 스토리라인은 당연히 전혀 없음. 쓰릴미는 판타지입니다, 여러분! 네더시 보면서 우리나라에 쓰릴미가 들어오면서 지명이나 인명 이런 거 다 빼고 그와 나, 로 만들어놓은 게 얼마나 적절한 로컬라이징이었는가 새삼 감탄했음. 그래서 쓰릴미나 계약서, 이런 넘버들은 없지만 흐름상 아, 이거 쓰릴미 이 넘버 즈음, 이런 생각들이 쏙쏙 든다. 쓸덕들에게 최소 자첫은 권하는 이유가 여기에. 네더시 보고 쓰릴미를 보면 되게 또다른 재미가 있을 듯. 그리고 종종, 저건 네이슨이 할 대사인데, 싶은 것들을 리차드 로엡이 친다. 그것도 하필 정욱진 리차드 로엡이 치고 있으니 자꾸 내 눈에는 저거슨 뉴넷인가 욱로엡인가...!! 그런 생각들도 들게 하더라.


개인적으로 제일 처음과 마지막 로엡과 레오의 장면이 재밌었는데 이건 이 극 자체로 좋았다기 보다도 뭔가... 솔직히 내 안의 쓰릴미 속 리차드와 네이슨를 대입하는 느낌으로 재밌었음. 제일 첫 장면은 레오가 숲 현장학습 교사 같은 걸 하고 있고 로엡이 그걸 지켜보면서 둘이 서로 슬쩍, 텐션을 올리는 장면인데 이게 마지막 장면의 다음 씬이더라고. 그러니까 첫 장면은 둘의 두 번째 만남, 마지막 장면은 둘의 첫 번째 만남. 특히 마지막 씬에서 레오폴드가 로엡한테 작업 거는 거 너무나... 이야..! 내 차에 가서 포커 치고 술도 마시자는데... 로엡이 나 집에 일찍 들어가봐야 해! 하는데 그러지 않아도 될 걸?( ͡° ͜ʖ ͡°) 하는 레오 너무 플러팅 천재만재..! 욱로엡 넘 홀딱 넘어가!ㅋㅋ


이렇게 은근히 극 내내 둘의 관계성(왕과 노예, 범죄를 위한 결합 뿐만이 아니라)을 굉장히 말랑말랑하게 다룬다. 저런 만남의 감정씬 같은 것들, 그래서 쓰릴미에 대입하게 된다는 거다. 모두가 침묵하는 세기의 '재판'을 강조하는 게 아니라 로엡과 레오폴드의 이야기에 더 방점이 맞춰져 있다는 거. 물론 둘이 얼마나 후안무치한 놈들인지에 대해서는 더 자세히 다뤄지기도 한다. 범죄를 말리려고 애쓰고 바들바들 떠는 쓰릴미의 네이슨과는 달리 네더시의 레오는 침착하게, 즐기면서 로엡과 함께 범죄 대상을 고른다. 물론 쓸로 따지자면 로드스터 장면에서는 떠는 모습도 나오는데 이게 범죄가 두려워서 떠는 게 아니라 일을 '그르치는 것'을 무서워한다는 느낌. 자신의 완벽한 이상을 실현시키지 못할까봐 걱정하는. 재밌었던 건 아무래도 내 안의 네이슨 캐릭터 이미지랑 겹쳐보고 있었던 게 있었는지 살인 후에 배수구 앞에 서서, 레오가 로엡을 부른다. 이리 와서 보라고. 제 코트가 진흙에 온통 젖었다고, 이럴 줄 알았으면 낡은 모직 자켓이나 입고 오는 건데, 아끼는 걸 입고 와서 이렇게 됐다고 흥분과 아주 약간의 두려움에 들떠 떠들어대고 있는 로엡에게 내가 아이의 피를 맛봤다고, 얘기하면서. 내 자리가 그렇게 말하는 레오의 등만이 보이는 자리여서 나는 로엡더러 와서 보라고, 아이 피를 맛봤는데 쇠맛이었다고, 말하는 레오의 감정이 두려움과 죄책감이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딱 와장창 깨지더라고. 아, 여기의 레오는 진짜 네이슨이랑 전혀 다른 애구나. '천재적인 밤'을 완성하기 위해 로엡과 함께 자신들의 '철학적 실험'이 완성된 광경을 함께 보고 싶어하는 애구나. 이렇게 내 안의 기존 캐릭터 성격들이 무너지는 시점들이 재미있었다. 아마 페어나 배우마다도 다른 느낌이겠지만 기본적인 설정들이. 그리고 둘의 개새끼스러움^^(개야 미안!)을 더 드러내는 장면들이 있는 것도. 로엡이 바비 장례식장에 가서 언론과 인터뷰를 하는 내용에서 바비는 어떤 아이였는지 말해달라는데 테니스를 잘 치는데 아주 싸가지 없는 애였다고, 내가 만약 누군가를 납치해서 죽인다면 그런 애를 골랐을 거라고 딱 저 짤과 같은 얼굴로 말하는 욱로엡이라거나 저희들한테 '죽음'이라는 단어가 오기 전까지는 재판정에서 낄낄대고 얘기하는 두 사람이라거나, 신문에 난 저희 모습을 보며 나는 나가서 영화를 찍을 거라고 거들먹거리는 로엡이라거나... 중간중간 두 사람이 기자들과 인터뷰하거나 의사와 상담을 받는 내용들도 나오는데 거기서도 죄책감보다는 자신들의 철학과 이상에 대해서 떠들어대는 모습들이 많이 나온다. 계속 얘기하는 'Übermensch' 라거나. 이런 모습들은 관객들로 하여금 저 새끼들을 그냥...?^^?? 하는 마음이 들게 하는데... 그게 최종변론에서 갑자기 대로우가 사형론 폐지를 들먹이고 사형은 야만적이고 사람들의 충동이고 웅앵웅... 하게 되니 뭐라고...? 싶어짐.


그런데 한편으로는 아까 말했다시피 극 내내 둘의 말랑거리는 감정선이라거나 두 사람의 약점 같은 것들을 전시해줘서. 특히 네더시의 로엡은 쓰릴미에서 '그래서 네가 왜 엄마한테 약한데!??' 라고 생각했을 부분을 잘 설명해준다. 중간에 감옥에서 편지 쓰는 장면이 나오는데 로엡은 엄마에게, 레오는 아버지에게 편지를 쓰는데 그 내용이 참 두 캐릭터를 극명하게 대비시킴. 로엡은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아닌 척하면서도 절절하게 쏟아낸다. 반면 레오는 보내주신 책 잘 읽었다는 이야기인데 새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어떤 내용이냐면 독수리보다 평범한 제비류의 새가 사실 더 두개골이 크다는 이야기. 자기는 당연히 맹금류가 더 두개골이 클 줄 알았는데 의외로 평범한 새가 더 두개골이 크다, 는 이야기인데... 로엡과 레오폴드 그들 둘을 비유하는 말처럼 보이더라고. 사실 그리고 제일 첫 장면에서도 숲 현장체험학습에서 레오폴드가 설명하는 말들도 둘의 살인 과정이나 그런 것들과 꽤 닮아 있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이 극에서 제일 크게 상징으로 쓰이는 부분이 대로우가 두 아이를 제일 처음 만나고 나서 '왜 바비를 죽였냐'는 물음에 대한 답으로 추는 춤. 그 앞부분에서 로엡이 레오에게 춤을 가르쳐주는데 곧바로 레오가 다시 로엡을 리드하면서 춤을 춰보인다. 그리고 대로우 앞에서는 누가 먼저 리드하고, 의 의미가 없이 서로 뒤엉켜서 움직임을 만든다. 솔직히 나는 약간... 볼 안쪽을 세게 짓씹었지만👀서로의 목을 찌르거나 뒤엉켜서 껴안거나, 왈츠로 시작했지만 마지막은 춤이라기 보다는 현대 무용에 가까운 느낌의. 좀 더 조명의 조도가 어두웠으면 좋겠단 생각은 좀... 했다...🙈🙈


조명 얘기가 나왔으니까 제일 잘 보였던 조명 중 하나가 불리한 증언 나왔을 때였던가... 둘이 인터뷰하거나 각자의 방에 떨어져 있을 때 각자의 영역만큼 사각의 조명이 의자 주변으로 바닥에 떨어지는데 로엡 방의 그 사각의 공간이 천천히 조여지더라고. 아주 직설적인 효과. 로엡이 확실히 그런 면에서도 그렇고 감정적으로 날뛴다는 걸 자꾸 보여준다.


대로우와 검사는 생각보다 정말로, 비중이 없다. 공연 내내 모든 배우들이 무대 위에 계속 있는데 변호사는 왼쪽 벽의 책상에서 둘의 모든 모습을 계속 쳐다보고 계시는데 그 집중력 흐트러지지 않는 눈빛은 진짜 좋았음. 그러나 나는 여전히, 마지막 변론에서 대로우가 눈물까지 흘리며 그 둘을 변호하게 되는 그 전체적인 흐름에는 감응을 못하겠다. 곱씹어도 여전히 그 두 부분의 무게가 안 맞는 느낌이야. 극의 균형이...(그러나 방금 다음 주 표를 한 장 더 실결함) 어떻게 보면 오히려 쓸덕이라서 이 극을 극 자체만으로는 못 보겠다 싶은 생각도 들었음. 나 스스로가 너무 이 극이 쓰릴미와는 다른 메세지를 주길 바라면서 보고 있어서. 일단 처음 보는 감상으로는 쓸과 비슷할 거면 굳이 내가 이 극을 볼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극적으로 레오와 로엡의 이야기들 중에 TMI라 느껴지는 부분들도 있어서. 차라리 철저히 로엡과 레오가 소품으로 이용됐으면 좋겠다 느낌. 중간에 둘의 '동성애적 관계'에 대한 의사의 소견도 몹시 자세히 나오는데... 사실 그날 공연 중간에 관객석에서 그 부분에 다소 사고(?)가 있어서 대사 자체를 자세히 듣지는 못했는데 여튼... 우리가 생각하는 쓰릴미에서 '쓰릴미' 넘버의 느낌과는 전혀 다르다. 되려 반대의 느낌이 강함. 네이슨처럼 레오가 그런 육체적 관계에서 스릴을 얻었다는 이야기도 나오는데 거기에 대응하는 리차드와 로엡의 방법은 정반대의 느낌. 레오가 화가 난 것처럼 보이자 로엡도 엄청 쩔쩔맨다. (여담인데 형훈레오가 욱로엡 허벅지 베고 누워있는데 욱로엡 허벅지 양손으로 잡는데 거의 다 잡히더라고..) 심지어 뒤에 저메인(로엡의 여자 친구, 이자 로엡이 처음 등장하고 나서 바로 '허리를 꺾으며 드라마틱하게' 키스를 시전하는 대상... 인데 욱로엡이 처음에 저메인 허리 꺾고 그거 받쳐서 버텨줘야 하는데 뒤로 밀리면서 주춤주춤대서 볼 씹음)의 증언에서 로엡이랑 한 번도 섹스한 적 없다, 는 얘기까지 나옴....(...로엡이 ㄱㅈ라니...!!👀!!!) 여튼 그런 식으로 로엡 역시도 레오와의 육체적인 관계에 얽매어 있는 느낌을 엄청나게 줌. 육체의 무슨 부분을 탐구하였고 어쩌고 막 이런 식으로 의사 얘기가 나오는데 와우내... 하면서도 전체적으로 그런 증언들의 대사가 되게 길단 생각도 함.


이런 게 되게... 극 내에서 안타까운(?) 게 기자들 끼어들고 이런 부분들은 리듬감 빨라져서 좋은데 되려 막 증언을 길게 한다거나 검사나 변호사가 변론한다거나 하면 훅 쳐지는 느낌이 든다. 그들의 비중이 그렇게 많지도 않은데 나오면 늘어지는 기분이 들고... 그와중에 어딜 쳐내면 좋을까 괜히 고민도 해보지만 그렇다고 딱히 쳐낼 부분은 없는 것 같고. 지루하다는 평들이 많을 수밖에 없고 나도 중간중간 그런 생각이 들었고 그런데 이걸 어떻게 할 수가 없을 것 같고... 혼돈한 지루함... 과 같은 의식의 흐름이 극 중간 중간 치솟는다...ㅇㅇ...





* 180207 네버더시너 / 강승호네이슨, 정욱진 로엡, 윤상화 대로우, 이현철 크로우, 기자 外 윤성원, 이상경, 현석준 / 괴물은 태어나는가 만들어지는가. 그리고 그 괴물은, 죄가 없는가.



1. 앞부분은 자첫 때보다 훨씬 잘 들어와서 시간이 무척 빨리 가는 기분이었다. 훨씬 더 쫄깃해진 느낌. 그런데 앞부분이 그런 만큼 오히려 최후변론 부분은 더 지루하고 길게 느껴지더라. 왤까?? 상화 대로우 연기도 좋고 감정선도 자첫 때보다 훨씬 설득력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제 뒷부분은 보면서 저는 이미 이 내용을 다 알고 있으니까 스킵하게 해주세요...!!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앞부분이 1시간처럼 흘러가는데 최후변론 부분만 30분은 하는 느낌. 네더시 마지막까지 이 부분을 내가 극복하지 못할 것이라는 강렬한 예감. 그런데 어제 상화 대로우는 진짜 좋았음. 자첫 때는 변호사도 그저 속물 중 하나인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어제는 좀 더... 인권 변호사 같은 느낌이 많이 들더라. 형훈 레오보다 승호 레오가 훨씬 감정적이라서 대로우의 말에 훨씬 더 흔들리는 느낌을 많이 주기도 하고. 욱 로엡-형훈 레오에선 형훈 레오가, 욱 로엡-승호 레오에선 욱 로엡이 싸패 느낌. 여하간 그래서 어제는 그래도 대로우가 마지막 최후변론에서 흘리는 눈물이 이해가 갔다.



2. 욱 로엡과 승호 레오는 뭐랄까... 여수 일진과 경상도 조류학자의 만남이랄지...👀ㅋㅋㅋㅋㅋ 그래도 욱 로엡이 첫공보다 훨씬 힘이 많이 빠져서 좋았다. 첫공은 군데군데 욕할 때나 야구씬에서 소리지를 때 너무 과하게 소리낸다, 는 생각을 했는데 어제는 훨씬 더 좋았음. 그리고 승호 레오는 배우 자첫이었는데 대사톤은 취향이 아닌데 연기톤은 은근 취향인 괴상한 지점에 도달함. 정말 차갑고 냉철한 면이 돋보이는 형훈 레오와 달리 승훈 레오는 훨씬 감정적이고 여림. 많이 울기도 하지만 대로우 앞에서 무너질 때에도 형훈 레오는 제 이상이, 저의 니체가 무너졌다는 것에 충격을 받는 느낌이었는데 승호 레오가 말하는 '제 심장이 틀렸다면요?' 에서 심장은 진짜 죄책감 같은 느낌이 있더라. 형훈 레오의 심장은 이성과 철학이었던 것과 달리. 애새끼 욱 로엡과 함꼐 둘 다 정말 서툴고 어린 느낌이 많아서 특히 감옥 야구씬에서는 둘이 꼭 붙어앉아서 떨며 얘기하는데 너무 어린 연인 느낌이 많이 나더라고. 어제 욱로엡이 좀 더 많이 떨기도 하고 울음을 참기도 한 탓도 있지만 연출 의도대로 동정심을 충분히 불러일으킬만 하더라.


다한 승레오는 딕션이 뭉개지는 부분이 종종 있어서 아쉽. 특히나 대로우랑 심장 얘기할 때, 확 화내면서 얘기하는데 정말로 대사가 하나도 안 들렸다ㅠㅠ 내가 만약 자첫이었다면 무슨 대사인지 전혀 알아듣지 못했을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레오 캐릭터 자체는 취향이라서 앞으로 굳이 피하지는 않을 듯. 승레오는 감정을 훨씬 많이 드러내서 제일 첫부분에 현장 학습 강의에 욱로엡 찾아왔을 때에도 중간중간 욱로엡 보느라 말 잊는 듯한, 엄청 신경 쓰는 듯한 모습이 더 눈에 띄더라. 그리고 확실히 그 부분은 살인을 상징하는 부분이 맞는 것 같다. 그 도입씬이 극의 축소판 같은. 그리고 욱로엡이랑도 훨씬 감정적으로 많이 연결되어 있는 느낌. 감옥 야구장 씬에서도 형훈 레오가 당연히 우리 둘을 떨어뜨려 놓을 거라는 말을 꽤 담담하게 하는데 승레오는 로엡만큼이나 거기에 무너지는? 느낌이 있더라. 그리고 바비 죽인 다음에 여기 와서 보라고 할 때에도. 손 잡고 우리는 이제 영원히 함께하는 거라는 말을 하는데 만약 쓸로 친다면 정말 바비 죽이는 것에 죄책감은 가지지만 촤한테 엄청 집착하고 의존하는 네이슨이었겠단 생각을 했음. '난 그냥 너랑 함께 있고 싶었어' 대사가 잘 어울릴 네이슨.


그리고 욱로엡은 재밌었던 게 첫공 보다 많이 자연스러워졌고 살짝 힘도 뺐는데 승레오가 감정적이다보니 욱로엡이 몹시 싸패처럼 느껴짐. 싸이코패스는 보통 감정이 전혀 없다, 고 생각하지만 그게 아니라 정말 사회적인 공감 능력이 없는 아이, 그게 어제 욱로엡이었음. 그렇게 생각하다보니 오히려 전체적으로 연결이 자연스럽고 대사도 잘 붙더라. 전형적인 싸이코패스의 모습으로 남들의 인기와 호감을 사는 방법을 잘 알고 있지만 그 모든 것은 사회적인 감정이라기보다는 자기 스스로의 만족을 위한 느낌. 그래서 제게 소중한 엄마, 그리고 승레오 말고는 세상 누구도 특별하게 여기진 않는. 그들에게 사랑 받는 것이 로엡을 안정적으로 지지해주기 떄문에 그들이 필요한. 그러나 그것이 공감에서 오는 것은 아니다. 승레오가 대로우와의 언쟁에서 완전히 무너질 때 욱로엡이 제 말을 따라주지 않는 승레오에게 화내다 걔가 그렇게 울고 무너지니 얘가 왜 이러지? 하는 얼굴로, 같이 슬퍼하거나 화내는 게 아니라 정말 그저 당황스러운 얼굴로 쳐다보는데 아, 쟤는 정말 공감력이 1도 없는 싸패구나, 하는 생각이 확 들었다. 그리고 기자랑 인터뷰할 때 나는 욱로엡이 기웃거리는 게 저 너머의 승레오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기자가 무엇을 쓰는지 훔쳐보는 거더라고. 제 얘기를 어떻게 쓰는지, 그러면서 언론과 대중의 관심을 받는 게 너무 즐거운 아이. 그리고 그게 '새는 모두를 내려다본다' 라는 말과 이어지고 또한 나는 당신들이 하는대로 한다, 관객들이 웃으면 웃고 진지하면 같이 진지해진다, 라는 대사도 착 붙게 하더라. 다른 사람들의 감정과 행동을 흉내내는 듯 해서. 그리고 이런 욱로엡 노선을 보니 마지막 대로우의 최후변론이 잘 와닿게 되었음. 저 아이는 자라나는 무한한 순간 속에서 무엇인가 잘못 만들어진 아이라는 그 말이. 이 괴물은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는가. 이 극 속에서 어린 시절 독일인 유모에게서 자라났다는 것과 제일 처음 한 말이 '나인 나인 마마(No, No, Mama)' 라는 것, 그리고 기도문 얘기할 때마다 욱로엡이 괴로운 표정 짓는 거... 이게 다 로엡의 유년 시절에 대한 떡밥이며 이로서 그의 존재와 베풀어야 할 관용과 자비를 정당화하게 되는데...


그래서 나 역시도 일단은 괴물은 그래서 만들어지는가 태어난느가, 하는 생각까지는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괴물에 의해 희생당한 이에게까지 자비를 강요해야 하는가. 그 괴물은 본인의 의지로 괴물이 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만들어졌거나 태어났거나, 둘 다 괴물이 원해서 된 것은 아니니까? 그래서 그 괴물의 순수한 악의 역시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 나는 무한한 자비와 관용을 베풀며 아주 이성적이고, 미래를 향해 진일보하면서? 역시 그 관점까지는 가기 힘들더라. 세상에는 내가 자비를 베풀 수 없는 개자식들이 너무 많고 나는 광기와 무지에 휩싸여 살고 있다. 아마도 앞으로도 그렇게 감정적으로 그들의 죄를 볼 것이다. 나는 죄만을 미워하고 죄인을 미워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임을 네더시 보면서 깨닫는다. 그리고 솔직히 네더시를 보면서 사형 폐지나 그들의 죄만을 미워해야 한다는 오롯한 결론에 도달하는 게... 요상하게 자존심이 상하는 포인트가 있다. 여전히 그들을 너무 '동정적으로 보게 한다'는 게 되려 거부감이 드는 포인트. 어제도 최후변론 중간에 둘이 매달리는 것에 대해서 얘기하고 우리가 그 아이를 죽이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얘기할 때 흐르는 배경 음악이 너무너무나 감성적이라서 오히려 내가 정신을 차려야지, 싶게 만들더라. 나는 원래 그렇게 울라고 만들어주는 판 같은 거 잘 동조되는 편인데도(K신파나 국뽕 신파 좋아함) 사건이 사건이고 논의가 논의며 시대가 시대이고 한국이 한국이니만큼, 휩쓸리고 싶어지지 않게 만든다, 오히려. 차라리 그런 부분들 배경 음악 다 빼면 어떨까 싶음. 연출이 과하게 의도하고 유도해서 꼰대처럼 느껴지는 지점이란 생각까지 들게하는 걸 보면.



3. 그리고 배우들이 입에 붙도록 연습할 떄 같이 재번역 작업 거쳤다고는 했는데 나는 아직도 생소한 지점들이 몇 군데 있다. 의도한 바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메인한테 검사가 그날 로엡이랑 성관계를 했냐고 물을 때 아니요, 라고 대답하고 그 이전에는? / 아니요. 라고 대답하는 것도 뭔가 한 번 들었을 때 딱 흘러가는 게 아니라 걸려서. 틀린 건 아닌데 그냥 없어요, 라고 답하면 더 좋겠단 생각을 함. 그리고 로엡이 레오한테 네가 내리쳤다고 해달라며 비는 장면에서 이게 그들이 바라는 거야! 우리를 찢어놓는 거! 우리 대 우리, 혹은 우리 대 그들! 이 장면 우리 대 우리 대신 너 대 나... 같은 거 쓰면 더 잘 와닿지 않을까. 이건 왠지 원문이 그럴 것 같기는 하지만. 재연 들어가면 좀 바뀌려나 싶은데 재연이 올까...👀 자리가 많이 빕니다...



4. 승레오가 '그는 나의 가장 큰 적이야. 내 목숨을 걸어야 할 수도 있지. 그가 내 동경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 알아. 하지만 그것도 기꺼이 감수할 수 있지.' 이 부분 대사할 때 너무 좋았다. 딱 그런 레오폴드였다.



5. 욱로엡은 배수구씬에서 자꾸 도망치려는 게 어울려서 좋다. 그러다가 레오가 이제 우리는 영원히 하나라고, 손을 꽉 잡을 때 그 결속을 강하게 느끼고 다시 더 깊게 의지하게 되는 감정선이 어울려서 좋다. 이 페어가 그 부분을 엄청 강하게 느끼게 해줬어.



6. 그런데 욱로엡이 나 떠나지 말라고 막 안으면서 매달리고 승레오가 확 밀쳐낼 떄 너무 뉴넷 지뢰다... ㄸㅏ흐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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